성공한 외식인 생생 스토리 #1
호남 인기 닭볶음탕집
<기찻길옆오막살이>송창열 대표를 만나다!
<기찻길옆오막살이>의 대표가 된 배경
아버지의 간암 판정 그리고...
송창열 대표가 대학에 입학한 1998년, 그의 부친은 전주 우아동에 손수 초가집을 지어 라이브 카페<기찻길옆오막살이>를 개업했다. 라이브 카페인데 파전과 동동주, 쌍화차 등 을 팔았다. 치밀한 영업 전략 없이 개업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대박이 났다. 당시 전국적인 라이브 카페 붐에 편승한 측면이 있었고 모친의 빼어난 음식 솜씨도 한 몫 한 결과였다.
그러던 중 평소 애주가였던 부친이 간암 판정을 받았다. 병세는 심각한 편이어서 누군가의 간을 이식 받아야 했고, 송 대표가 나섰다.
송 대표의 삶은 부친의 간암 발병 이전과 이후로 갈렸다. 간 이식 수술로 인해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진 대표는 결국 부친에 이어 <기찻길옆오막살이>의 운영을 맡았다.
잘 나가는 줄 알았던 카페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출은 오래 전부터 하향세를 타고 있었고, 양친의 방임적 인사관리로 인해 직원들의 의식과 근무 기강 해이도 큰 문제였다.
# 총체적 난국에서 5배 매출 증가로
해결책의 첫걸음
: 조리법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업무 습득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직원들과 결부된 것이어서 그들을 설득하고 공감과 변화를 유도해야 했다.
그러나 직원들 눈에 송 대표는 ‘사장님 아들’일 뿐이었다. 대부분 고연령층이었고 양친과 손발을 맞춰온 이들이 많았다.
해결책의 첫 걸음은 공부였다. 대표로서 업무를 지시하거나 지적하려면, 그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했다.
먼저 음식 조리법부터 배웠다. 어느 정도 조리에 자신감이 생겼을 때 표준 조리법을 정하고 레시피로 못을 박았다. 조리법을 비롯해 서비스나 업무의 표준을 바로잡으면서 급한 불은 껐다. 그 사이 문제가 많은 직원들도 차츰 교체되어 분위기도 개선됐다.
점포의 정체성 재정립
: 술집에서 밥집으로, 40개 메뉴에서 단일 메뉴로.
더 큰 문제는 점포의 정체성 재정립이었다.
초가집, 라이브, 동동주 등 점포 핵심 요소들을 나열해봤다. 더는 이런 요소로는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다. 콘셉트 포지션이 어정쩡했던 것이다. 이미 대중은 이런 콘셉트에서 마음이 떠났다. 몇 년간 서서히 떨어진 매출이 그걸 증명했다.
그렇다면 기본 방향을 술집에서 밥집으로 돌려야 했다. 그렇다고 밥집으로의 전환이 순탄해보이지는 않았다. 당시 찌개류를 비롯해 40여 가지 메뉴가 난립하고 있었던 터라 주메뉴를 정하기도 어려웠다.
남들이 하지 않는 메뉴이면서 우리가 잘 할 메뉴를 찾아봤다. 우리만의 강점을 살리되 경쟁력을 높일 방안도 고민했다. 초가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메뉴 단순화와 전문화의 길로 가닥을 잡았다. 40여개였던 메뉴를 20개로, 다시 20개에서 10개로 그리고 결국에는 닭볶음탕 단일 메뉴 체제로 정착하는데 7년이 걸렸다. 꾸준히 조금씩, 멈추지 않고서.
닭볶음탕집의 고객 스펙트럼을 확대하려면 대중성을 넓히고 최신 감각도 입혀야 했다. 닭볶음탕의 맛과 질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한 이유다.
닭은 그냥 먹는 것보다 염지하면 맛이 훨씬 좋아진다. 이런저런 염지 방법들을 실험하고 시도해봤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지금의 마늘 숙성법이다. 잡내를 제거해주고 육질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보통 닭볶음탕은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압력솥에 넣고 조리한다. 그러나 이 집 마늘닭볶음탕은 냄비에서 조리해도 충분히 맛과 육질이 살아난다.
#클래식과 캐주얼, 균형 유지
점진적인 변화 : 소( 小 )자 도입
전문화와 고급화, 그리고 분위기의 캐주얼화와 함께 메뉴의 캐주얼화를 시도했다. 닭볶음탕은 심리적으로 가격적으로 무거운 메뉴다. 허들을 최대한 낮춰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메뉴가소(小, 2만5000원)자!2인 고객도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도록 마늘 닭볶음탕의 양과 가격을 줄였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닭볶음탕을 일상적 식사 메뉴처럼 마음 편히 주문하는 메뉴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캐주얼함과 유행을 따르는 건 아니다. 요즘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치즈나 쫄면 사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우동사리 정도는 허용한다. 치즈나 쫄면을 넣으면 당장은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보면 메뉴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이다. 예술 작품이든 음식이든 고전적인 것이 오래 간다. 유행가의 전성기는 한철이다. 송 대표는 선을 넘지 않고 클래식과 캐주얼의 균형을 지키려 노력한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지향한다. 끊임없이 발전과 변화를 주되 고객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점진적인 변신을 시도해왔다.
👨🍳“자주 오는 손님은 느끼지 못하지만 2~3달 만에 온 손님이 ‘어! 달라졌네’ 하는 정도가 알맞다. 예를 들면 제공하던 생수를 보리차나 헛개물로 바꿨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점점 점포는 발전한다. 달라지지 않는 가게에 고객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코로나에도 매출이 오를 수 있던 이유
고객 연령별 매출 구성비에서 의외로 20~30대 비중이 높은 것도 눈길을 끈다. 물론 평일에는 지역 내의 40~50대 고객이 많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외지의 젊은 고객이 자리를 채운다. 닭볶음탕 전문점으로는 이례적이다.
젊은 층이 트렌디함만 좇을 것 같지만 깔끔하고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아이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송 대표의 믿음이다. 역시 기본 중시와 트렌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한 결과다.
코로나19 기간에도 매출이 오히려 늘었다. 아무리 팬데믹 상황이라 해도 꼭 필요한 식사 모임은 있기 마련. 쉽지 않은 기회이니 이왕이면 비싸도 좋은 데 가서 먹자는 심리가 작동한다. 전문화, 고급화를 시도한 식당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대체로 매출이 증가했던 배경이다. <기찻길옆오막살이>도 이런 현상의 수혜를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창업 이래 최고의 매출 정점을 찍고 1억원을 기록했다. 약 10년 만에 5배의 매출 증가를 일궈낸 것이다.
# 공부의 힘으로 제 2 브랜드 준비
송 대표는 요즘 서울시 등 지자체나 외부 기관의 요청으로 종종 강의도 나간다. 물론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 경영을 위한 실전 노하우가 강의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송 대표는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히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그가 가르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교학상장이란 말처럼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려는 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가시밭길을 성공적으로 헤치고 나온 것은 꾸준히 공부해 쌓은 지식의 힘이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가열차게 공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새로운 사업에도 지식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이제 <기찻길옆오막살이>는 본 궤도에 안착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순항할 것이다. 송창열 대표에겐 지금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적기이자 전환기다. 요즘 자신의 영혼이 담긴 제 2 브랜드를 기획하고 있다. 차곡차곡 모아둔 지식들을 하나씩 꺼내 쓰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내 외식업 인생 전반기는 부모님이 창업한 것을 나름 성공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시간이었다. 그동안 구상해온 나만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외식 브랜드를 만들면서 ‘시즌 2’를 열고 싶었다. 면류를 주제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점포를 내년쯤 선보일 예정이다.”
송창열대표의 앞 날을 기대하며 성공한 외식인 생생 스토리 #1 을 마무리하겠다.
식당경영 개선전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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