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가 궁금하다 | 2편
한반도 고기 역사는 겨우 1000년?
🤔 한반도에서 쇠고기, 고기 문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거란, 몽골의 침략 시기다. 그 이전에는 고기보다 곡물을 먹었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만질 줄도 몰랐다. 불고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고기의 시작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고려인들은 고기를 널리 먹지 않았다
고려는 곡물, 해산물 위주로 식사했던 농경민족이었다. 중국인들이 맥적을 기록한 것은 4세기 초반이다. 그로부터 800년쯤 후인 1123년 무렵,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수도 개경에 왔다. 본국인 송나라로 돌아간 후 그는 고려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고려도경>이다.이 책에서 그는 “고려인들의 고기 만지는 솜씨가 형편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예가 있다.
“(고려인들은) 돼지를 제대로 손질도 하지 않고, 그대로 불에 구웠다. (내장을 빼지 않으니) 심하게 냄새가 난다”고 전한다. 도축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돼지 통구이를 한 것이다.
고려인들은 오래전 수렵 어로 시대에 통째로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인 ‘맥적’ 800년 후에도 고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소도 아니고 돼지다.
예나 지금이나 소보다는 돼지 다루기가 쉽다. 돼지마저 다루지 못해서 내장도 빼지 않고 통구이를 했다. 고려의 고기 다루는 솜씨가 이 정도다.
고려는 고기가 아니라 곡물, 해산물을 주로 먹던 나라였다. 해산물도 마찬가지. 큰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굴, 거북손, 해조류 등 해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은 개체들이다.
기본적으로 고려는 고기, 해산물 손질이 서툴렀던 농경민족 국가였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소고기 문화’가 시작되었을까?
양성지(1415~1482년)라는 인물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양성지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6명의 왕을 모셨으며,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공로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2년(1456년) 3월 28일의 기록에는 양성지의 상소문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이 상소문에서 양성지는 한반도 ‘고기 문화의 시작’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 (전략) 대개 백정을 혹은 ‘화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단(韃靼)’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중략) 백정(白丁)이라 칭하여 옛 이름을 변경하고 군오(軍伍)에 소속하게 하여 사로(仕路)를 열어주었으나, 그러나 지금 오래된 자는 5백여 년이며, 가까운 자는 수백 년이나 됩니다. 본시 우리 족속이 아니므로 유속(遺俗)을 변치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둔취(屯聚)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혼가(婚嫁) 하는데, 혹은 살우(殺牛)하고 혹은 동량질을 하며, 혹은 도둑질을 합니다. 또 전조(前朝) 때,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하니, 가장 앞서 향도(嚮導)하고 또 가왜(假倭) 노릇을 해 가면서, (중략) 혹 자기들끼리 서로 혼취(婚娶)하거나 혹은 도살(屠殺)을 행하며, 혹 구적(寇賊)을 행하고 혹은 악기(樂器)를 타며 구걸하는 자를 경외(京外)에서 엄히 금(禁)하여, 그것을 범한 자는 아울러 호수(戶首)를 죄 주고 또 3대(三代)를 범금(犯禁)하지 않는 자는 다시 백정이라 칭하지 말고, 한가지로 편호(編戶)하게 하면, 저들도 또한 스스로 이 농상(農桑)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도적이 점점 그칠 것입니다. |
고기를 먹으려면 동물을 도축하는 이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백정’이다. ‘화척(禾尺)’ ‘재인(才人)’ ‘달단(韃靼)’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여럿이나 통칭하여 ‘백정(白丁)’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한 단어 바로 그 백정이다. 거란의 고려 침입 이전에는 백정이 없었다는 뜻이다.
‘달단’은 타타르 혹은 타르타르TARTAR 족이다. 오늘날 터키 등을 포함하여 동유럽으로 간 중앙아시아의 유목, 기마민족이다. 타타르 스테이크는 우리의 소고기 육회와 닮았다. 바로 이들의 소고기 요리법이다.
백정, 화척, 재인, 달단은 가축을 도축하는 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민족이다.
전조(前朝)는 조선의 전 왕조인 고려를 뜻한다. 거란족의 고려 침입 때 군대의 앞잡이인 향도(嚮導) 노릇을 하면서 들어왔다. 더러는 왜군으로 가장하여 민가를 침범했다.
고려는 농경 국가다. 외부에서 들어온 북방의 민족은 기마, 유목민족이다. 농경민족이 곡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면, 북방 기마민족은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다. 농사를 지을 줄 모른다. 이들이 고려로 들어오면서 짐승 도축 일을 주업으로 삼는다. 고려에는 없던 직업이다.
삶의 터전, 삶의 방식이 다르다. 기마, 유목민족은 사냥하고 고기를 도축하며 산다. 농사를 짓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모여 산다.
세금도 내지 않고, 병역 의무도 지지 않는다. 고려 왕조로서는 다루기 힘든,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불안 세력들이다.
평소에는 도축하며 살다가, 가축이나 짐승이 부족하면 동냥질도 하고 유랑질도 서슴지 않는다. 이도 어려우면 어느 순간 도적이 된다. 벼슬길도 열어주었지만, 이들은 관심이 없다.
흔히, 몽골의 고려 침략기에 고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틀렸다. 그 이전이다.
양성지는 5백 년 전이라고 했다. 양성지는 15세기 사람이고, 거란의 고려 침입은 10세기 무렵의 일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전쟁은 모두 세 번 있었다. 993년, 1010년, 1018년이다.
양성지의 상소문은 1456년이다. 약 5백 년 차이다. 거란은 요나라다. 요나라는 거란족, 여진족의 국가다. 모두 북방 유목, 기마민족이다.
고려는 농경 국가였다. 북방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이 만난다. 기마민족의 고기 문화와 농경 국가의 곡물 위주 음식이 만난다. 이 문화가 조선으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세조 2년(1456년) 양성지가 상소문을 올린 후, 이민족들의 불법 도축은 사라지지 않는다. 11년 후인 세조 13년(1467년) 1월, 도승지가 된 양성지가 다시 상소문을 올린다. 상소문 내용이 기가 막힌다. 불과 10년 사이, 고기 문화가 얼마나 넓고, 깊게, 그리고 빨리 번지는지 보여준다.
📜 옛날에는 백정(白丁)과 화척(禾尺)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경외(京外)의 양민(良民)들도 모두 이를 잡으며, 옛날에는 흔히 잔치를 준비하기 위하여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 안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이를 잡고, 옛날에는 남의 소를 훔쳐서 이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에서 사서 이를 잡습니다. |
한양 바깥의 양민들이 시장에서 고기를 팔기 위하여 소를 도축한다.
고기 산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예전에는 잔치를 위해 ‘1회 성 불법 도축’이었으나 이제는 상습적으로 도축한다. 깊은 산이 아니라 시장(저자)에서 버젓이 도축한다. 불법 도축, 쇠고기 식육 문화는 조선 왕조 내내 진행된다. 고기 문화는 조선 후기 불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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