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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자세가 나와야 해(1)
엄마가 고무장갑에 집착했던 이유, 우리 알바생을 보고 깨달았다
안녕워녕
카페 사장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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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에게 꼭 고무장갑을 끼라고 했다.

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엄마는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달려와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몇 번을 말해!!"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베란다에 있던 엄마는 달려와서 반드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했지!!!" 내가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끼는 걸 확인하고야 엄마는 베란다로 돌아가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일을 했다. 엄마는 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주방에 있을 때도, 베란다에 있을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세탁기를 돌릴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꼈다.

집에서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해 놓으면, 밤에 귀가한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설거지, 고무장갑 끼고 한 거야?" 내가 그렇다고 하면 엄마는 "그래"하면서도 의심쩍은 얼굴로 내 손을 훑었다.


평일 낮의 우리 알바생은 알바 경험이 풍부하다.

스무 살 때부터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이삭토스트에서 풀타임으로 1년 반을 일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경력인데, 파리바게뜨와 설빙에서도 1년이 넘도록 지금껏 일하고 있다. 한편 그전에 있던 알바생은 우리 카페에서 한 알바가 첫 알바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두 알바생을 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알바 경험의 차이는 일에 대한 자세의 차이였다. 우리 카페에서의 알바가 첫 알바였던 알바생은 맨손으로 설거지를 했다. 그러니 차가운 물에는 "앗 차가워!" 했고, 뜨거운 물에는 "앗 뜨거워!"라고 했다.

청소를 할 때도 맨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걸레를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손 끝으로 살짝 잡았다. 바깥에 떨어진 쓰레기를 손으로 주울 때는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떨어질 듯 말 듯하게 집어 올렸다.

알바 경험이 풍부한 알바생은 모든 일에 앞서 일단 고무장갑을 낀다. 고무장갑을 낀 이 알바생은 거침이 없다. 얼음물에도 손을 풍덩 담그고,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에도 손을 풍덩 담근다. 아무리 더러운 그릇도 덥석덥석 잡아 씻는다. 세제를 풀어 벅벅 행주를 빨고 걸레를 빤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바깥에 나가 양손에 한가득 쓰레기를 줍는다.

이 알바생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왜 그토록 고무장갑에 집착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손이 거칠어지는 것도 걱정했겠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일하지 않는 나의 자세에 대해 화를 냈던 것이다.


내 인생은 참 감사하게도 순조로운 인생이었다.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쟁취해야 하고,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하다 보면 다음 단계가 열렸고, 그다음 단계로 슬슬 돌입해서 또 성실하게 해 나가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꼭 해야 돼!" 하고 달려들었던 적이 없었다.

'되면 좋지. 아님 말고.'의 마인드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험에서 떨어져도 별로 큰 타격이 없었다. '내 길이 아니었나 보지. 어쩔 수 없지.' 하면 끝이었다.

아빠는 이런 나를 좋아했다.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모든 젊은이들이 너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데 그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아빠가 알게 된 건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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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가 나와야 해 2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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