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는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연다.
사실 이 '8시 30분'이란 시간은 나 스스로에게 정해놓은 마지노선 같은 개념이다. 나는 가능한 더 일찍 가게에 나와 오픈 준비를 하고 8시 30분이 되기 전에 문을 연다. 하지만 유난히 아침이 힘든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는 헐레벌떡 뛰어나와 부랴부랴 당장 급한 준비만 후다닥 하고 '8시 30분'에 딱 맞춰 문을 연다. 한 번씩, 마음이 풀어지려고 할 때가 있다. 어차피 내 가겐데,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꼭 '8시 30분'에 맞출 필요가 뭐가 있나. 하루쯤 조금 여유 부려도, 조금 게으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알람이 이미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아침, 침대에 들러붙어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이런 나를 "안돼! 일어나서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지!!"라고 벌떡 일으키는 건 한 사람의 얼굴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오시는 손님이 있다.
9시에 출근하시는 직장인이신데, 항상 8시 45분~50분 사이에 우리 카페에 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 가지고 가시는 분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오시는 그분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하나도 급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말투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신다. 최근에 집을 이사하셔서 출근길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아침에 조금 더 일찍 나온다는 그분은, 그래서 지난주부터 8시 30분~35분에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나의 오늘 아침은 ① 침대에 들러붙은 몸을 떼어내는데 오래 걸렸고 ② 아침 식사로 끓인 국이 너무 뜨거워 후후 불며 먹느라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③ 요즘 우리 집 지하주차장이 공사 중이라 카페에 차를 그냥 두고 다니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너무 늦게 왔고 ④ 늦게 온 버스는 늘 그렇듯 모든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도 많고 내리는 사람도 많아서 정차 시간이 매우 길었고, 신호도 계속 빨간불이어서 10분 거리를 25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오늘 아침은 정말, 역대급으로 가게에 늦게 출근한 날이었다.
8시 26분 도착.
매일 아침 오시는 그분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머리도 묶지 못한 채, 겉옷과 가방을 벗어던지고 그라인더에 원두를 들이붓고 머신 세팅부터 시작했다. 두 종류의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먹고 '휴, 팔아도 되겠군'이라고 생각하자마자 '딸랑' 소리가 나며 그분이 들어오셨다. 아침 내내 내 눈 앞에 어른거리던 바로 그 얼굴. "안녕하세요!"하고 들어오시는 그분을 보고 나는 급히 가게 불을 켜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늘 그렇듯 그분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들어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말투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셨다. 커피를 내리며 시계를 보니 시간은 8시 32분. 그분은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인사를 나에게 먼저 하신다. 커피를 주는 내가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하기 전에 그분이 먼저 나에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해주시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 덧붙여 한마디 더 해주셨다. "아침에 이 커피를 한 잔 마실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의 나약한 생각들과 정신없던 그 모든 순간이 일순간 없는 일이 되었다. 나는 그분을 떠나보내고 하던 머신 정리를 마저 하고 머리를 묶고 앞치마를 두르며 엉엉 울었다.
카페 사장님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정보를 얻으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한 번은 거기에 어떤 사장님이 이런 글을 올리셨다. "사장님들, 다시 태어나면 카페 사장 하실 건가요? 저 2년 차 카페 사장인데, 요즘 계속 현타가 와서 질문드립니다." 이 질문에 수많은 카페 사장님들이 '아니요'라는 댓글로 대답하셨다. 카페 사장은 힘든 직업이 맞는 모양이었다. 카페 사장은 여유로운 직업이 못된다. 그중 "오피스 상권에서 2~3평 정도 규모에 홀 운영 안 하고 테이크아웃만 하는 매장이라면 5년 바짝 하고 그만둡니다." 하는 댓글이 보였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댓글이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어제 첫 출근을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고, 나름 커피에 대해 공부도 한 친군데, 첫날이라, 어색한 주방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나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오신 세 분 중에 한 분은 지난주에 첫 출근하신 분이에요. 지난주 내내 얼어계시더니, 오늘은 다른 분들이랑 같이 웃고 떠들고 하시네. 금방 많이 친해졌나봐. 내가 다 흐뭇하다."
"이 분은 커피를 아주 연하게 드시는 분이에요. 에스프레소 샷은 반만 넣고, 뜨거운 물도 따로 드리는 게 좋아요." 저 분은 추운 날에는 아이스커피를 드시고, 좀 따뜻한 날에는 뜨거운 커피를 드세요. 흥미롭죠." 대체 그런 걸 다 어떻게 아냐고 알바생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모든 손님을 다 기억하냐고. 몇 번째 왔는지, 무슨 메뉴를 시키는지 그걸 어떻게 다 하나하나 알 수 있냐고. "그냥 알겠던데?"라며 나는 씨익 웃었지만,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을 기억하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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