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늘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교통사고다.
N 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들. 바로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출근길에 차가 빽빽이 서있었고, 나는 무리해서 우회전을 하려다 그만 화단 경계석에 차를 가져다 대고 말았다.
퍽! 출근길의 교통사고는 얼마나 절망적인가! 내 출근시간은 지키지 못할지언정 다른 사람들의 출근시간마저 잡아먹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쿵덕쿵덕 탈탈 탈 털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차를 기어코 끌고 움직인다. '조금만! 조금만! 저 앞에 주차장까지 조금만 더!'
*
나의 이 절박함이 통한 걸까?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정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었다.
폴더인사를 건네고 보험 회사에 연락했다. 오른쪽 앞바퀴는 아예 퍼져서 휠까지 갈아야 했고, 뒷바퀴는 타이어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큰 구멍이 나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보험사는 "일반 렉카로 안 되겠는데요. 큰 거 하나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큰 거? 큰 거는 또 처음인데? 그렇게 40여 분간 기다리니 도착한 큰 거는, 정말 컸다.
큰 거에서 내린 기사님은 내게 상황을 물었다. 조금 긴장이 되었는지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우회전하다 화단 경계석에 부딪혔다고 상황을 설명하자, 기사님이 이렇게 말한다.
"차랑 손잡고 화단에 꽃 보러 다녀오셨나 보네요" 🌻
한껏 긴장해있는 내게 건네지는 농담은 정말이지 유쾌하고, 또 멋스러워서 그만 웃고 말았다.
기사님도 반응이 좋은 나를 두고 크게 웃는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 웃고 넘기자. 이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가!
나중에 수리센터에서 받은 견적서에는 공임비를 포함하여 총 66만 원이 찍혀있었는데, 이 금액마저도 이젠 하나의 개그 같다. 66이라니. '내 옷 사이즈랑 같잖아? 금액도 찰떡같이 잘 나왔네'
어쩌면 내 하루를 온통 잡아먹을 수도 있는 사건이, 기사님의 한 마디로 시시하게 넘어가버렸다.
그 덕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고, 우연히 이날 저녁에 개기월식이 있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붉을 달을 가리고, 그 달은 다시 천왕성을 가리는 진귀한 밤하늘의 경이로움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교통사고로 온종일 마음이 심란했다면 눈에 담지도 못할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말 한마디로 모든 걱정 근심을 떨쳐내준 기사님의 언어유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까.
그렇게 독서모임 멤버들과 달 사진을 찍으며 '내가 잘 찍었니' '너는 못 찍었니' 하고 있는데 한 멤버가 이렇게 말한다.
"달이 눈썹만 했는데 이제는 눈곱만하네. 에잇! 사진 다 찍었다" 그네의 말에 우리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 오전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독서모임을 할 때 한 손님이 전해준 말이 떠오른다. "우주를 보고 싶다면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공기는 투명하기 때문에 올려다보는 하늘이 그냥 '쌩' 우주인 셈입니다" |
우주를 보려면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면 된다는 그 말이 얼마나 멋지던지. 내가 오늘 찍은 달의 사진도 우주를 담은 거구나 깨닫게 된다.
사진 안에 담겨있는 우주의 경외감을 함께 나누고 싶어 다른 손님들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다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즐기세요!'라고. 그런데 곧 손님이 답장을 보내온다.
📬 '울집 구석, 방금 소식을 전달해드립니다' 아내: 오늘 달을봐야해 남편: 보름이야? 아내: 아니, 월식이잖아. 남편: 삼식이도 아니고 월식? 아내: 밥밖에 모르는 인간아 헤어지자. |
모든 이들의 말을 가만가만 곱씹어 보면 이런 언어유희와 해학이 담겨있다.
그 말들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네들의 경험, 생각과 가치관, 마음 씀 그 모든 것이 묻어있는 것이다.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이다. 누구나의 말에는 이런 유쾌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다.
어쩌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말들을 '아름답다' 인지하고,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이 순간이 내겐 벅차오른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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