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으로 장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이전에도 장을 보면 '장바구니가 꽤 가벼워졌구나' '물가가 오르긴 정말 많이 올랐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삶의 공포를 느낀 것은 생에 처음이었다.
3%대에 받은 주택 담보대출이자는 7%를 육박했다. 왜 변동금리를 택했냐고 자신에게 모질게 비난해 보지만, 그땐 그게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남편의 계약직 업무는 5월로 계약이 종료된다. 남편은 5월 이후의 공백 기간을 각오하며 하루를 살아낸다. 매달 매출은 반 토막이 난다.
장바구니 물가를 고민하던 손님들, 한기를 느낀 손님들은 점차 본인의 소비를 줄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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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내일이 두렵고, 남아있는 미래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계산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아들이 크리스마스에 받은 용돈을 꺼내어 계산을 한다.
계산대 맞은편에 있는 포장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종이박스를 접어 장을 본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타요'모양의 너겟을 집어 들다 헛웃음을 짓고 만다. 주차장으로 가며, 집으로 오며, 집에서 장본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한참이나 공허함 속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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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른 날과 어김없이 나의 일터로 출근한다.
먼지 쌓인 책들을 닦아내고, 매장 곳곳을 청소하고 나면 온몸에 열기가 후끈 오른다.
빗자루를 꽉 쥔 손에 오르는 열감이 오늘을 살아낼 용기를 준다.
📿
자영업은 염원하는 일이다.
손님이 오길, 손님이 이 공간에서 잘 머물다 가길, 그리고 꼭 다시 이 공간을 찾아주길.
난방기는 가슴이 덜컥거릴 만큼의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건만, 손님이 없는 날은 이제 스스로를 위로한다.
'몸'이 자본인 내가 감기에 안 걸리고 따뜻했으니 됐다고. 그렇게 나는 오늘의 영업도 무사히 잘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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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맥주만 한 것이 없건만, 냉장고에 술이 떨어졌다. 내 소소한 넋두리를 받아줄 그 한 잔의 자작이 없으니 사무치게 외롭다.
나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어떻게 하루를 달랠까.
그러다 문득 하나의 깨달음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신형철의『인생의 역사』에서는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 즉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칭한다. |
언젠가 부엌의 타일이 누런 때가 끼길래 저걸 언제 닦지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뭐가 걱정이라는 듯 씩 웃고는 "5월부터는 백수니까 내가 닦을게"라고 말했더랬다.
나에 대한 동정, 남편에 대한 연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사랑이 밥 먹여주냐 말하지만, 사랑이 나를 살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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