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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넌, 화강암을 닮았어.
살아가는데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나. 주어진 하루를 그냥 묵묵히 살아내는 게 삶인 거지
애매한 인간
서점겸카페 사장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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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 일어나서 남편이 보내고 간 메시지를 확인해본다. 가을은 여실히 느껴지고 이제는 겨울이 저 멀리서 '나 곧 갈게!'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이런 날은 확실히 몸이 무겁다.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몸도 그에 반응하고 적응기를 갖는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올 거니 대비하라고 미리 찬바람이 경고하면, 내 몸이 그 신호에 반응하듯이.


*


남편은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해서 출근한다.

지금은 나름 근거리인 창원으로 출퇴근을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울산과 경주까지 일하러 갔다.

"하루에 세네 시간 자는 일상을 6년간 반복했잖아. 이 정도면 사람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다 살아지더라."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몸에는 매일같이 작은 생채기가 있었다. 그는 내게 다치면 다쳤다, 힘들면 힘들다 말하는 법이 없었기에 늘 큰 상처만이 눈에 띄었다.

공사현장의 일은 고되고 또 하루하루가 처절해서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썰물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그렇기에 늘상 막내로밖에 있지 못했던 그는 일터를 이렇게 회상한다.


"공사장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 보면 다 가장이야. 그 무게 앞에서는 소장이든 막내든 다 같아."


그의 말 속 '가장'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 기술은 진보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가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애처로움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힘들지 않냐는 내 물음에 "살아가는데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나. 주어진 하루를 그냥 묵묵히 살아내는 게 삶인 거지"라고 답하는 그의 말이 너무나도 우직해서 웃음만 나왔다.


*


남편은 내게 화강암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산 활동과 강력한 압력으로 생성된, 거칠도 단단해서 왠지 모르게 듬직한 화강암 말이다. 화강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고도 가장 널리 덮여있는 돌이다.

이 희읍스름한 화강암은 참 단단해서 디딤석이나 계단, 건축물의 외장재로 많이 쓰인다. 건축물에서도 내부가 아닌 꼭 '외부'에서 그 쓰임을 다하는데,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내는 그 강인함과 우직함이 엿보이지 않은가.


때마침 읽고 있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에도 궁의 건축자재로 화강암이 등장했는데, 나도 모르게 "남편 이야기네"라고 읊조렸다. 비단 남편뿐일까. 동트기 전 건축현상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화강암일테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에서는 화강암을 이렇게 소개한다.

유럽에서처럼 수려한 대리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궁에서는 유럽의 궁 곳곳에 놓인,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매끈한 피부의 대리석 조각상은 찾기 힘들다.
대신 정강이뼈가 쪼개질 듯한 추위와 정수리를 녹여내는 더위, 돌연 찾아오는 태풍과 건조한 공기를 수백 년간 견디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화강암이 있다.
나는 이것이 어쩐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묵묵히 그 우직함을 쌓아온 그네들의 돌 같은 모습이 내게도 하루를 시작할 힘을 쥐어주는 듯하다.


*


남편은 내게 본인은 '깊이 고민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의 한 마디, 한마디의 말에서 일상의 철학을 깨우친다.

자기 인생을 그 자신만큼 진지하고도 철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어딨을까. 그대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대에게 때론 연민을 그리고 자주,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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