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56 토종배추에는 무언가가 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면 메뉴나 비법에 대해 고민을 한다.
전수 받자니 비용이 많이 들고, 혼자 하려니 방향을 잡기 또한 쉽지 않다.
오늘은 그 방향의 시작점에 대해 식재료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볼까 한다.
식당 운영의 새로운 방향? 토종에게 물어봐
절대적인 답은 아니지만 식당 운영 중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면 ‘토종’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토종'이란? : 그 땅에서 나는 본래의 종자 |
'토종'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토종닭, 토종돼지 정도이다.
한우 또한 토종이지만 닭이나 돼지처럼 중간에 사라진 적이 없고, 한우라는 말 자체에 토종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토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채소도 '토종'이 있다
닭이나 돼지에 토종이 있다면 쌀이나 채소 또한 토종이 있다.
1톤 차에 실려 오는 파 한 단이나 양파 한 망, 고추 한 상자는 대부분 종자회사에 만들어 낸 개량형이다.
종자회사에서는 적당히 잘 크고, 적당히 수확할 수 있다. 비슷한 재료에 MSG를 더하면 적당히 맛을 낼 수 있다. 회사가 달라져도 맛은 거기서 거기일 뿐, 차별화가 힘들다. 비법을 알려주는 곳 대부분 조미료 잘 쓰는 법을 알려 준다. 🧂
이렇게 만들어진 적당한 맛의 메뉴는 영업은 가능할 수 있지만 '나만의' 메뉴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먹고 있는 배추
사극 드라마에서 주막이 나오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게 우거지나 시래기 넣고 푹 끓인 국밥이다. 보다가 언뜻 든 생각이 “배추가 지금과 다르지 않나?” 였다.
우리가 알고, 먹고 있는 배추는 19세기 후반 국내에 들어왔다는 중국 산둥성의 배추로 알려져 있다. 속이 꽉 차 결구가 되는 배추다.
🧐 '결구'란? : 호배추나 배추 따위의 채소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서 둥글게 속이 드는 일 |
결구가 되지 않는 토종 배추
호배추가 들어오기 전 국내 배추는 주로 결구가 되지 않는 배추였다. 현재 동대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근처 주변이 가장 맛있는 서울배추 산지였다고 한다. 서울배추에 필적하는 배추는 개성배추로 알려졌다.
토종배추 우거지 + 갈비탕
올해 계획한 상품 중에 ‘토종배추 우거지로 만든 버크셔 갈비탕’이 있다. 🍖
봄부터 기획을 해서 8월에 배추 파종을 했다. 필자가 심었던 토종배추는 구억배추다. 이 배추는 결구가 되지 않으며, 맛은 고소하고 단맛이 있다. 게다가 김치를 만들고 찌개를 끓이면 맛이 기가 막혔다.
작년에 구억배추로 김치를 만들고 몇 번 찌개를 끓였는데, 결구 배추로 찌개를 끓이는 것과 달리 오래 끓여도 배추가 힘을 잃지 않았다. 구억배추 우거지로 갈비탕이나 국밥을 만들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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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를 해보니 우거지 곰탕 HMR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우거지가 10~20% 정도 들었고 맛을 보니 국물은 거기서 거기였다. 우거지 또한 푹 퍼져서는 씹는 맛이 없었다.
올 가을, 구억배추 한 포기를 삶아 우거지를 만들었다. 샘플로 만들어 놓은 버크셔 갈비탕에 양념을 하고, 우거지를 넣고 푹 끓였다. 사극 속 주막에서 내내 끓이던 국밥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오래 끓여도 씹는 맛이 살아있다
생각대로 구억배추 우거지는 몇 시간을 끓여도 씹는 맛이 살아 있었다. 🥬
중간에 회사 사정으로 일이 미뤄지는 일이 생겼다. 심어 놓은 배추를 어찌할까 하다가 절임 배추로 팔았다.
그동안 알음알음 샀던 사람들로부터 다시 전화가 더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에 먹어왔던 배추와는 다른 맛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토종 배추는 결구 배추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매력이 있다.
토종배추에는 뭔가가 있다
절임 배추든 우거지든, 토종배추에는 전에 먹었던 배추와는 다른 맛과 질감이 있다. 나만의 비법, 나만의 메뉴 개발을 위해서는 토종 채소와 같은 식재료 공부가 첫걸음이다.
메뉴 개발, 뭣이 중헌디 알면 비법을 전수받는 것보다 재료 공부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