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회원으로 이용중입니다. 로그인을 하시면 더많은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하기
회원가입하기
사장님119
알아두면 쓸모 있는 소금 이야기-2편
[황광해] #음식이야기 #소금을 둘러싼 부패한 사건 사고 #자염 vs 천일염 #우리나라의 전통 소금은?
황광해
음식 인문학 전문가
구독자 65
#음식이야기
#한식
#지역특산물

홈 보러가기
            



알아두면 쓸모 있는 소금 이야기

2편 - 천일염, 정제염 그리고 자염에 대하여


2년 간수 뺀 천일염이 좋다?!

💬'2년 간수 뺀 천일염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뚜렷한 근거는 없다.

근거가 없으니 막연한 주장만 남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저 달다, 맛있다'를 반복한다.

누가 처음 ‘2년 간수 뺀 천일염을 주장했는지도 모른다. 왜 간수를 2년 빼야 하는지, 왜 천일염인지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근거가 확실치 않음에도, 대부분이 마법의 주문처럼 ‘2년 간수 뺀 천일염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식당 주방은 대부분 정제염 혹은 천일염+정제염을 사용한다. 정제염의 비중이 오히려 높다.




정제염에 대하여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금은 정제염이다.

정제염은 맑고 깨끗함을 내세우며, 실제 나트륨 농도는 97% 이상으로 최상급 수준이다. 불순물도 거의 없다. 생산라인에서는 100% 염화나트륨(NaCl) 성분으로 100%농도의 소금이다.

정제염은 공기에 노출되는 순간 약간의 수분을 빨아들이는데, 이것이 정제염이 100% 염화나트륨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정제염의 3% 내외가 수분, 굳이 표현하자면 소금이 아닌 불순물이다. 즉, 정제염은 대략 97% 염화나트륨+3% 수분💧’으로 이루어진 소금이다.




공장소금으로 불리는 정제염

정제염은 흔히 공장 소금혹은 화학 소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염전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

'화학소금'의화학이라는 표현이 자연’ ,‘천연의 반대말은 아니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맑고 깨끗하게 만든 다음, 이온화 과정을 통하여 만든 소금이지, 추가로 화학적인 약품 처리를 한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정제염은 염도가 정확하기 때문에 일정한 염도를 요구하는 공장에서 많이 쓰인다.

정제염의 대량 생산으로 소금 부족에서 벗어나고, 소금 가격이 싸질 수 있었다.



천일염, 우리 전통 소금은 아니다

천일염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후인 1907년부터 시작하여 그 역사가 짧은 편이다.

천일염 염전을 처음 만든 장소는 인천 주안이다. 일제는 당시 기준 매우 선진적이었던 정제염 공장을 일본에 세웠고, 한반도에는 천일염 방식을 이식했다.

현대적인 소금 공장은 일본에, 노동력넓은 땅이 필요한 천일염 염전 시스템은 갯벌이 널리 발달하여 소금을 만들기 좋은 지형인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

염전에서 만드는 방식은 타이완 등에서 오래전부터 행하여 온 방식이었다.




한반도의 전통 소금은 '자염'이다

한반도의 전통 소금은 천일염이 아니라 '자염'이다. 고려, 조선 시대 그리고 그 이전에도 우리는 자염을 쓰며 살아왔다. 수천 년 이어온 우리의 전통 소금이다.

자염(煮鹽)자(煮)굽는다는 뜻으로 자염은 말그대로 '구운 소금'을 말한다. 지금도 소금 굽는다는 표현을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염을 만드는 원리는 가마솥에서 바닷물을 졸여서 만드는 것으로 간단하지만, 노동력과 자재 소모가 심하다.

제일 큰 문제점은 땔감용 나무를 구하는 일이다. 이미 난방과 취사용으로도 아궁이에 장작을 쓰기 때문에 더 이상의 나무는 큰 자재 소모였다.



서서히 사라지는 천일염 염전

천일염은 자염만큼 만들기 힘들지 않았다. 천일염은 노동력을 비교적 적게 사용하였고 땔감 대신 태양열을 사용했기에 자재 소모가 적었다. 인천 주안의 염전은 설치 당시 크게 주목받았다.

이 천일과 염전이 서해안 일대로 번지고 태안반도, 변산반도, 무안, 신안, 목포 일대 등으로 번졌다.

이 것이 우리나라 천일염의 역사다. 하지만 현재 천일염 염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염전이 태양열 발전소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염 vs 천일염

자염과 천일염은 모두 바닷물을 사용하고, 가열처리 하여 수분을 증발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땔감의 유무와 소금을 구할 수 있는 바다의 측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1) 땔감의 유무

하지만 천일염은 넓은 염전에서 태양열,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구하고, 자염은 바닷물의 염분 농도를 높인 다음,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로 졸이고 볶아 결정체를 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천일염은 땔감이 필요 없지만, 자염은 땔감과 가마솥이 있어야 한다.


2) 소금을 구할 수 있는 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염전은 대부분 서해안에 있다. 넓은 갯벌이 있고 염전을 만들 땅이 있는 곳에서 천일염 생산이 가능하다.

자염은 다르다. 바닷물이 있는 아무 곳에서나 자염 생산은 가능하다.

서해안뿐만 아니라, 경상도 남해안의 구포 일대나 동래, 함경도의 함흥 일대에서도 자염을 생산했다. 소금물은 어디든 있으니 땔감과 인력이 있으면 모든 바닷가에서 소금을 구웠다.

소금 굽는 사람을 염한(鹽漢)이라 불렀다. 소금 굽는 일은 무척 힘들어서 다들 피하려 했고, 결국 땔감과 염한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자염은 점점 더 만들기 힘들어졌다.





동해안에서도 자염을 생산했다

소금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구려, 부여에서는 동해안에서 구한 소금을 피지배계층, 하층민인 하호(下戶)들이 내륙 산악지대로 날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함경도 동해안에서도 자염을 생산했다. 당시의 기록에 어염(漁鹽)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물고기와 소금을 말한다. 염전이 한반도에 없었던 시절이기에 자염이 아니면 소금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다.

소금에 대한 기록은 오래전부터 등장하지만 고려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소금은 부족하였고 귀했다.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소금 도둑이었다

소금이 부족하니 소금을 둘러싼 분쟁도 일어나고 갖가지 사건, 사고도 많았다.🔪

서해에서는 중국 배의 소금 약탈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소금을 실은 우리 배를 중국 배들이 습격하여 사람을 해치고 소금을 빼앗아 가거나, 소금을 약탈한 후 우리나라 사람들을 무인도에 버려두고 가는 일도 있었다.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젊은 시절 승려였던 적도 있고, 도둑질도 했다.

그 중 뚜렷이 남아 있는 기록 중 하나가 바로 염적이다. 염적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소금을 도둑질, 강도질하는 이를 말한다. 바다의 소금 도둑이다. 중국 명나라 시절에도 소금이 귀했으니 주원장 같은 염적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소금을 둘러싼 부패한 사건 사고

소금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도 부패한 사건은 일어났다.

소금값을 미리 주는 선금 거래도 흔했다. 쌀이나 베를 미리 소금값으로 주었지만, 정작 소금은 약속한 날 못 받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염한, 염간, 염부는 모두 자염을 만드는 이들이다. 소금 굽는 일이 워낙 힘드니 염한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는 일이 잦았고, 최하위 계층인 노비, 승려, 군인, 몰락한 서민들이 소금 굽는 일에 동원되었다. 베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한 소나무 등을 땔감으로 훔치다가 엄한 벌을 받는 일도 잦았다.

근무지 이탈의 벌은 엄했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소금 굽는 일을 하다가 도망치다 잡히면 전 재산 몰수에 종신형에 가까운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음식인문학 전문가
황광해 의 소금 이야기 🧂


👉 소금 이야기 1편- 세상에는 소금이 많다




2022년 11월 16일
캐시노트 가입하고
필요한 컨텐츠 알림받기
이전글
사람에 지치지 않도록! 사장님을 위한 직원 관리법
다음글
외식업 소상공인을 위한 사장님119 모음 [11월 1주차]
공감 2
저장 3
댓글 0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