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42식재료 특성을 무시한 음식들! 🥘
음식을 딱히 가리지는 않지만, 있으면 먹는데 애써 찾지 않는 음식을 꼽자면 마라탕과 해물탕이다.
두 음식은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과 식재료 특성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점이다.
마라탕 열풍, 그러나?
마라탕은 다양한 재료를 골라 맛볼 수가 있다. 딱 거기까지가 장점이다. 다양하게 고를 수는 있는데 각각의 재료를 제대로 맛있게 먹기는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그렇다. 마라탕 전문점에 가면 빈 그릇이 준비되어 있다. 그릇을 들고 커다란 냉장고 앞에 서면 다양한 재료가 놓여 있다. 배추, 청경채, 숙주를 비롯해 만두, 떡, 햄, 어묵, 당면, 옥수수면 등을 고르고 나면 양고기나, 소고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계산하기 전 맵기의 강도를 선택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자리에 가서 앉아 있으면 식재료의 개성은 깡그리 사라진 한 그릇이 앞에 놓인다.
식재료는 각각의 특성이 있다.오래 끓여야 맛이 나는 것이 있고, 살짝 데쳐야 맛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마라탕은 모든 것을 같이 넣고 끓인다. 끓고 있는 육수에 모든 재료를 넣고 가장 늦게 익는 것에 맞춰 조리를 한다. 그 사이에 채소는 곤죽이 된다. 면도 마찬가지다. 빨리 익는 옥수수면과 늦게 익는 넓적 당면을 같이 익히니 옥수수 면은 너무 익어서 씹는 맛이 사라진다.
마라탕이라 부르기 애매한, 마라 맛이 나는 식재료 ‘혼돈탕’이 된다. 🥘
마라탕보다는 차라리 훠궈를! 🥣
두어 번 먹고 나서는 더는 마라탕을 먹지 않는다. 마라 맛이 나는 훠궈는 가끔 찾는다.
심지어 집에서도 가끔 해 먹는다. 아린 맛이 나는 ‘마자오’를 비롯해 팔각, 고추씨 기름을 손쉽게 구할 수 있기에 훠궈 맛을 내기가 의외로 쉽다. 육수는 따로 내지 않고 시판 고깃국물을 활용한다.
참고로 ‘마자오’는 우리나라의 ‘제피'와 같다. 일본에서 ‘산초’라 부르는 것 또한 제피와 같다. 우리나라에서 '산초'라 부르는 것이 있어 헷갈릴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산초'는 '제피’와는 다른 것이다. 제피와 비교하면 아린 맛이 적고 상큼함이 부족하다.
훠궈는 재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 먹고 싶은 정도를 조절할 수 있기에 매력적이다. 마라탕에서는 곤죽이 되었던 숙주나 청경채도 내 입맛에 맞게 익힐 수 있다.
해물탕 속 해물, 익을 수록 식감 떨어져 🐙
다음으로 해물탕을 보자. 마라탕과 달리 재료는 선택할 수 없다. 식당 주인이 정한 대로 대·중·소 크기만 선택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물탕에 마지막으로 넣는 것은 대부분 낙지다. 식당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낙지, 오래 삶으면 질겨요. 먼저 드세요”
그렇다. 낙지는 익을수록 식감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낙지 밑에 깔린 조개나 오징어는? 🦑
오징어와 조개 역시 살짝 익혀야 맛있다. 해물탕 안의 해물들은 익히면 익힐수록 식감과 맛이 점차 떨어진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서산에 출장을 가서 박속 낙지를 주문했다. 상이 차려지고 육수가 이내 끓기 시작하자 낙지 몇 마리를 한꺼번에 넣는 것이다.
기겁해서 한 마리만 빼고 나머지는 빼냈다. 잘 익지 않는 몸통을 잘라서 넣고, 다리만 살짝 익혔다. 팔팔 끓는 육수에 몇 마리를 한 번에 넣는다면 나중에 먹는 것은 질길 수밖에 없다.
고깃집에서도? 🥩
이렇게 재료의 특징을 무시한 모습을 고깃집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2인분을 주문하든 4인분을 주문하든 상관없이 불판 가득 고기를 굽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잘라서 공간을 만든 후 다시 고기를 때려 넣고는 필요하면 부르라 한다.
낙지와 같이, 익을수록 맛이 사라지는 고기의 특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식재료, 뭣이 중헌디!
마라탕이나 해물탕의 국물은 모든 재료의 맛이 농축되어 있어서 좋다. 두 음식이 오로지 국물을 위한 요리라면 한 번에 몽땅 넣고 끓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마라탕이나 해물탕 안의 재료들도 맛있게 먹기를 바란다.식재료는 제각각 익는 온도가 다르고 맛있는 시점 또한 다르다. 빨리 조리해야 한다는, 한 번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식재료의 특성이 보일 것이다.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익는 온도 등의 식재료의 특성 파악도 매우 중요하다.
식재료, 뭣이 중헌디 알면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손님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식당에 맛있는 것을 먹으러 온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농산물 전문가 김진영이 전해주는
생생한 식재료 이야기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