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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119
짜장면에 대한 오해와 진실 - 3편
[황광해] #음식이야기 #밀가루 #짜장면의_발전 #변천사
황광해
음식 인문학 전문가
구독자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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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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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에 대한 오해와 진실
3편 -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짜장면


📒 30초 미리읽기

◾ 짜장면이 흔해진 것은 밀가루 때문이다?◾ 다양한 짜장면의 등장, 유니짜장/쟁반짜장/짜파게티/짜파구리...◾ 100년의 변천사가 담겨 있는 짜장면 한 그릇




밀가루가 흔해지다


한반도는 밀 재배가 어려운 곳이었다. 굳이 밀 재배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밀은 주식이 아니었다. 쌀이 필수적이고 귀하다. 1년 2모작이 힘들면 소출, 매출이 적은 보리, 밀을 포기한다. 밀은 가격이 싸고, 농가 소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보리+쌀‘은 흔했다. 보리는 쌀을 대체하지만 밀은 아니었다.

1670년 무렵의 “음식디미방”에서는 밀가루를 진가루(진짜 가루, 귀한 가루)로 표기했다. 밀가루는 메밀가루보다 점도가 높다. 전을 부칠 때도 밀가루가 훨씬 낫다.

하지만 밀은 메밀보다 귀했다. 다만 밀가루는 귀하되, 여전히 주식이 아니었다. 주식이 아니니 천시했다. 원래 한반도에 밀이 흔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던 중, 1950년대 중반 미국은 ‘미공법 480조’로 한반도에 밀, 밀가루를 무제한 공급한다. (전후 여러 종류의 잉여 농산물 원조 제도가 있었다) 한반도에 미국산 밀을 쏟아붓는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한반도는 이 밀가루로 고비를 넘긴다.

시중에 밀이 흔해지면서 청요릿집들은 밀가루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찾아낸다. 짜장면과 중화(中華)우동이다. 짜장면은 여러 종류의 짜장면으로, 중국 초마면은 중화우동을 거쳐 짬뽕으로 발전한다.



짜장면 외식의 증가


일반 서민들은 가격이 높은 청요릿집의 고객이 아니었다. 청요릿집은 서울 등 대도시의 부호, 고급 관료, 권력자들이 다니던 곳이었다.

밀가루가 흔해질 무렵, 한국의 경제적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짜장면 외식’은 한국 가족들의 대중적인 나들이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도 남아 있는, 탕수육이나 라조기, 양장피 등에서 요리를 하나, 둘 고르고, ‘식사’로 짜장면이나 짬뽕, 볶음밥, 만두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청요릿집 코스 요리의 축소판이다.




1970년대에도 서민들에게 짜장면은 귀한 날 먹는 특식이었다. 외식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 중국식당은 좋은 선택지가 되었다. 자녀들의 성적이 좋을 때,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자녀들의 졸업식 등이면 가족들이 우르르 짜장면 집으로 나섰다.

누구나 인정하는 공통적인 짜장면 맛집이 없는 이유다. 각자의 추억 숫자 만큼이나 짜장면 맛집은 많다. 우리는 누구나 추억 속의 아련한 짜장면, 내 생애 최고의 짜장면 맛집이 하나씩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불행하게도 ‘내 생애 최애 짜장면 맛집’🏠 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 “내가 전교 1등을 했을 때 온 가족이 000 중식당에 가서 먹었던 짜장면, 탕수육이 제일 맛있었다”

이런 추억이 담긴 맛집은 사라졌다. 추억의 맛을 이기는 맛집은 없는데 말이다.




짜장면, 망가지다? 발전하다?


짜장면은 심하게 변형, 발전된 음식이다.

망가지려는 것인지, 발전, 진화할는지는 두고 볼 문제다.

1960-70년대 짜장면이 인기 있을 때, 짜장면은 소비자물가지수를 셈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물가를 산정할 때 여러가지 제품, 서비스의 가격을 지표로 삼는다. 정부는 짜장면 가격이 오르면 물가지수가 올라가니 강력하게 ‘가격 단속’을 했다. 그래서 짜장면 가격은 제대로 인상되지 못했다.

화교 중식당들은 물가는 오르는데 짜장면 가격은 올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짜장면이 다른 음식에 비해서 싼 이유다. 대신 짜장면을 파는 중식당들은 짜장면과 비슷한 음식들을 개발하여 가격을 높였다.

🥢 간짜장, 유니짜장, 삼선짜장 등이다.
🥢 곧이어 쟁반짜장, 옛날짜장 등을 선보였다.
🍴 식품회사들은 짜장라면, 짜파게티, 짜파구리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원형 첨면장이 사라지다


짜장면의 기본인 첨면장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1950년대 말까지도 화교 중식당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첨면장을 공급하는 회사가 있었다. 수공업으로 만든 첨면장이나 화교 가정에서 먹다 남은 수제 첨면장을 수거하여 식당에 공급했다.
👉 우리도 마찬가지. 봄철이면 시골 집집마다 돌면서 가정에서 남긴 된장을 모아서 파는 이들이 있었다. 노포 식당 중에는 오래전 상인들이 모아온 시골 된장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1960년대를 넘기면서 짜장면 수요, 공급이 늘고 첨면장 수요도 급격히 늘었다. 첨면장을 공급하던 회사 ‘ㅇ’ 이 오늘날과 같은 첨면장, 춘장을 개발했다.

역시 화상이었다.

‘ㅇ’은 캐러멜색소를 더하고 단맛을 높였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짜장면의 첨면장, 춘장은 모두 이 회사의 방식을 따른 것들이다.

🔎 화상이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중국계 비즈니스맨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

전주, 익산, 김제, 군산 일대의 화상들은 상당수 일제강점기 때 금강 유역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인천 차이나타운, 여의도 일대, 서울 명동의 화상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첨면장과 공장제 대량 생산 ‘춘장’의 사이쯤에 자리하는 ‘물짜장’을 만든 것도 이들이다. 지금도 익산, 군산 일대에는 물짜장이 남아 있고, 군산은 짬뽕의 메카가 되었다. 모두 이들의 흔적이다.



물짜장



비비기 쉬운 한국식 짜장면


중화 웍으로 첨면장을 볶는 방식도 달라졌다. 짜장면 수요가 늘어났다. 중식당의 일손이 바빠졌다. 웍으로 첨면장을 볶는 것은 시간 상 한계가 있다. 한국인들의 급한 성미는 중식당이라고 피할 수 없었다. ‘빨리빨리’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다.

💬 “중식당에 음식을 주문하면 ‘지금 가요’라고 할 때 이제 웍에서 장을 볶기 시작한다”

일일이 볶지 않고, 쉽게 비빌 수 있는 🥄‘끓이는 첨면장’이 등장했다. 간짜장은 이런 끓이는 첨면장에 역행하는 음식이다. 지금도 간짜장의 양파는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끓이지 않고 웍으로 볶으면 양파의 식감은 살아 있다.



짜장면 한 그릇,
100년의 변천사가 담겨 있다


그동안 중식당, 짜장면집, 청요릿집 운영자와 주방의 요리사들이 많이 바뀌었다. 화교들은 자녀들이 대를 이어 중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꺼린다. 자녀들도 마찬가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짱꿰집 아들, 딸’이라는 표현이다. 오죽하면 ‘짱꿰’가 비속어로 지정되어 쓰지 말자고 할까?

가난했던 한국인들이 중식당으로 유입되었다. 인건비가 낮던 시절 중식당은 좋은 취업 자리였다. 가난한 이들이 중식당에 취업했고, 이들이 어느 날 중식당 주인이 되었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많은 노포 중식당의 주인들이 나이 든 한국 사람이다. 화교들은 이래저래 사라지고 있다.




강원도 산간오지의 탄광촌이나 경북 내륙 혹은 호남의 시골에 느닷없이 노포 중식당들이 나타난다. 오래전 밀가루 한 포대, 중화 웍, 칼 한 자루 들고 거처를 옮기고, 중식당을 열었던 화상들이 세운 집들이다. 이제 이들도 나이가 들고 은퇴한다.

인력난을 겪으며, 또는 급료가 높아지면서 수타면(手打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수타면으로는 가격이 낮은 짜장면을 내놓을 수 없다.

첨면장이 공장 제품으로 바뀌고,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인건비가 높아지니, 끓이는 짜장이 등장한다. ‘빨리빨리’를 원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첨장에 물, 전분을 더해서 걸쭉한 한국형 짜장을 만들었다.




짜장면의 미래


멀지 않아 수타면은 사라질 것이다.
멀지 않아 첨면장을 직접 담그는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몇 해 전 전북 익산의 ‘국빈반점’🏠 이 문을 닫았다. 메뉴에 ‘물짜장(면)’이 있었다. 첨면장을 볶았던 화교 자장미엔과 한국식 짜장면의 중간쯤에 걸친 음식이었다. 역시 한국에만 존재하는, 짜장면의 화석 같은 음식이었다. ‘국빈반점’은 첨면장을 직접 담았다. 사장 유비홍(劉丕洪) 씨가 연세가 들면서 가게 문을 닫았다.

반찬(?)도 달라졌다.

큼직하게 썬 대파를 반찬으로 내놓는 대신 ‘다꾸앙’과 양파를 내놓는다. 볶은 땅콩이나 짜사이(柞採, 작채, 자차이)를 내놓는 집도 있다. 짜장면에 반드시 돼지고기 혹은 돼지기름을 쓰는 것도 아니다. 짜파구리에는 돼지고기가 아니라 쇠고기가 등장한다.

짜장면은 중국에서 시작한 음식이지만 한반도에 들어온 후, 100여 년 동안 무수히 변화, 발전, 진화하고 있다.

짜장면은 한식의 길을 따르고 있다.


음식인문학 전문가
황광해 의 짜장면 이야기 🍜



👉 공화춘이 짜장면의 시작이다?


2022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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