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25 나고야의 토종닭 🎌🐓
일본 토종닭
2019년, 여름 시작 무렵이었다. 일전에 규슈의 구마모토의 작은 온천 마을에서 먹었던 토종닭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토종닭 문화가 궁금했다. 일본 토종닭은 1960년대 도쿄 올림픽 이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네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거치면서 생산성이 낮은 토종닭은 사라지고 외래종이 득세했었다.
토종닭 복원 운동
경제성장과 올림픽은 미식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미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양념을 달리하다가 재료 본연의 맛을 찾는다고 했다.
일본은 ‘육계와 다른 닭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토종닭 복원 운동을 시작했다. 60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적으로 100여 개 지역 닭이 있다.
우리는 그보다 늦은 1994년부터 시작했다. 토종닭 종류로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이고, 그마저도 한협 3호가 대부분이다.
아마쿠사 다이호
필자가 구마모토에서 먹은 닭은 ‘아마쿠사 다이호’ 6개월 키우면 1m, 10kg 가까이 자라는 대형 종이다. 국내에 귀국해서 토종닭 생산자에게 이런 닭 본 적이 있었나 묻기도 했었다. 돌아온 답은 “없다” 였다.
아마쿠사 다이호 외에 구마모토의 다른 토종닭도 주문했다. 둘 중에서 6개월 키운 아마쿠사 다이호가 압도적으로 맛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돌아와서도 내내 토종닭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토종닭 먹으러 가면 어떨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고야 여행기
우리보다 몇십 년 먼저 토종닭 먹는 문화가 있는 일본이라면 앞으로 우리 식문화도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생각을 붙잡고 계획을 짰다. 항공편을 예약하고, 토종닭 메뉴를 검색했다.
일본어는 몰라도 지도리(じどり, 토종닭)로 검색만 하더라도 많은 식당과 메뉴가 나왔다.
일본의 수많은 토종닭 중 최고는 ‘나고야 코친’. 이미 19세기에 육종한 토종닭으로, 일본에서 제일 알아주는 토종닭이었다.
다른 곳보다 제일 먼저 나고야로 3박 4일 떠났다. 🛫🛫
보편화된 토종닭
서울 시내에서 토종닭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우리네는 보통 찾아가야 먹을 수 있다. 일본은 달랐다. 시내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어디서든 먹을 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술집에서도, 우동집에서, 철판구이, 라멘 등등 수많은 메뉴가 있었다.
메뉴 중에서 괜찮았던 것이 덮밥이었다. 일본 장어 덮밥과 먹는 방식이 같았다. 그냥, 비벼서, 말아서 세 번 나눠 먹는다. 토종닭 살 바른 것을 간장 양념해서 구웠다.
색다른 토종닭 조리법
양념만 맛있으면 여운이 짧다. 재료가 맛있는 것은 맛의 여운이 길다. 삼키고 나서도 여진이 남는다. 재료가 가진 힘이 그렇게 만든다. 같은 자리에서 데바사키(날개 튀김)도 주문했다.
우리나라 교촌치킨과 비슷한 간장 양념이었다. 다른 곳은 소금 맛도 있었다. 토종닭의 날개인지라 우리가 보통 봤던 것과 크기가 달랐다. 꼬치도 주문했다. 소금만 뿌려 구웠지만 씹을수록 맛이 났다.
우동, 오야코돈도 괜찮았다만..
가장 좋았던 것은 철판구이. 🌑🦃🌑
토종닭의 각 부위를 철판에서 구워주는 요리로 제대로 된 토종닭 구이였다. 철판에서 굽고, 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요리로, 1인분 2만 원 내외였다. 무조건 끓이기만 하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선진적인 일본의 토종닭 문화
나고야에 다녀오고 나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규슈로 갔다. 가고시마, 구마모토, 미야자키로 3박 4일 토종닭 투어를 다시 갔다 왔다. 거기서는 7가지 토종닭 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닭 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불법이다.
30년 앞서 먹기 시작한 일본의 토종닭 문화는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가든 가서 고스톱 하면서 백숙 익기를 기다리는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토종닭은 없던 식재료가 아니다.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고 있었지만, 잊힌 식재료다.
다시 일상 속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닭, 뭣이 중헌디 알면 공부부터 시작하자.
농산물 전문가 김진영이 전해주는
생생한 식재료 이야기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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