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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차분하게, 그리고 과감하게(2)
아빠가 말했다. "차분하게 해. 바쁜 거 알겠고, 급한 거 알겠는데, 차분하게."
안녕워녕
카페 사장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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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스팀할 때는 차분해야 한다.

아무리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왔어도, 스팀할 때 차분하지 못하면 거품이 거칠어진다. 같은 우유를 같은 기계에서 같은 시간 동안 스팀하는데, 스팀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거품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한번 거칠어진 우유 거품은 어떻게 노력해도 되살리기 어렵다.

라떼를 만드는 모든 순간은 차분해야 한다. 차분함이 기본이다. 아무리 바쁘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도 나는 차분해야 한다.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든 잠깐 눈을 감았다 뜨든 두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차분해야 한다. 차분하지 않으면 우유는 망한다. 망한 우유로는 하트를 만들 수 없다.

차분하게 우유를 스팀했다면 이제 과감하게 우유를 들이부어야 한다. 조심스럽기만 해서는 안된다. 과감하게. 그러면서도 일정한 우유 줄기를 내보내려면 역시나 또 차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차분하고 과감해야 하는 것이다.




아빠는 늘 말했다. 차분하게 해.

집에서 청소를 할 때도, 걸레질을 할 때도, 강아지 목욕을 시킬 때도, 쓰레기 정리를 할 때도 아빠는 말했다. 차분하게 해. 바쁜 거 알겠고, 급한 거 알겠는데, 차분하게. 넌 어차피 일머리가 있고 손이 빠른 편이라, 차분하게 해도 충분해. 하나씩 하나씩 하는 거야. 급할 거 없어.

차분하게 한다는 것은 그저 천천히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의 순서에 맞게,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차분하게 하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손대서 어질러놓으면 순서가 뒤틀린다. 에스프레소가 담긴 잔에 차분하게 우유를 돌려 부어야 우유 줄기가 일정하게 쏟아진다.


그리고 결정의 순간에는 과감해야 한다.

과감해야 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그 순간을 놓치면 안정화도 망하고 하트도 망한다. '지금인가?'를 생각하다가 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지금!"이라는 판단이 든 바로 그 순간 왼손에 들었던 에스프레소 잔에 스팀 피쳐를 가까이 붙여 하트의 입과 꼬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단호하지 못하면 라떼는 그냥 커피 우유가 된다.

(냉장고 정리와 같은 일을 할 때는 과감함과 단호함이 특히 요구되는 것 같다. 이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버리지 못한다. 냉장고 정리할 때 나는 과감하게 끄집어내어 버리는데, 이때 아빠는 내가 조금 무섭다고 했다. 가끔 나는 너무 과감할 때가 있다면서. 나는 말했다. 아빠, 지금은 과감해야 할 때야.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감한 것은 성급한 것과는 다르다.

결정했다면 바로바로 진행하는 것. "지금!"을 놓치지 않는 것. 이미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결정이 내려졌다면, 또 심사숙고할 이유는 없다. 그냥 밀고 나가면 된다. 지금의 타이밍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카페를 오픈한 지 1달이 된 카페사장입니다. '내 카페에서 글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저는 카페 사장이 되었지요. 스탠리 쿠니츠라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무엇이 삶을 움직이는가? 첫째도 열망, 둘째도 열망, 셋째도 열망이다." 저는 오늘도 라떼를 만듭니다. 저는 글 쓰고 싶은 열망에 카페를 시작했지만 이 라떼는 제 카페의 열망이 되었어요. 저는 오늘도 또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들이붓습니다.

차분하게, 그리고 과감하게요.




차분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1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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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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