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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빵 사주는 어른(2)
스물두 살의 나도 그랬겠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어른'이었다.
안녕워녕
카페 사장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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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빵순이 알바생이 오기 전, 또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그 알바생도 스물두 살이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이제 곧 3학년) 학생이었다. 나는 건축을 전공한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건축에 대해(정확히는 '건축'보다는 '건축 공부를 하는 과정'에 대해) 조금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두에서 결점두를 찾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학년이 되면 공모전도 준비해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대학생활도 눈 앞에 지나갔다. 대학원에 가서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현장 일을 하고 싶다는 이 알바생은, 나중에 자기 이름을 붙인 건물을 지어 그 건물의 한 층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려면 일단 경력을 쌓아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고...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유현준 교수의 .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 주자, 우리 알바생은 책을 손에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렇게 곧장 열어보며 집중해서 읽어주는 모습이 좋았고, 그리고, 사회에서 어떤 좌절도 해보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야말로 '순수한 꿈'을 꾸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사회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전혀 안 힘들 수는 없으니까, 좋은 점 한두 가지가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그냥 한껏 기대하라고 할걸.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기대하라고 할걸. 딱 지금 너의 때에만 할 수 있는 그런 허황된, 그러나 소중한 기대를.


스물두 살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서른다섯의 미래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쉰다섯이 되어도 미래는 불확실하겠지. 하지만 스물두 살의 불확실한 미래는 뭔가 달랐다. '기대감'이었다. '이래서는 내 집 장만은 꿈도 못 꾸겠네'하는 불확실한 미래와는 달랐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멋진 어른'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붙인 건물을 짓는 '멋진 어른', 가격표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빵을 맘껏 고르는 '멋진 어른'. 이들의 '기대감'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장면은 없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그런 게 없다.

스물두 살의 나도 그랬겠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어른'이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어린이'인 게 싫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청소년'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느덧 대학생도 되었지만, 아직 '학생'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어도 어른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어른이 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다.

그건 아마, 더 이상 '어른'을 간절히 꿈꾸지 않게 된 시점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나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얼마나 더 살아야 어른이 되는 걸까'하고 일기에 쓰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어린 어른'이어서, 지금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싶지만, 아무튼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손님들에게 주는 영수증의 '대표자'란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온갖 고지서를 받아 든다. 가게에 문제가 생기면 다들 나를 찾는다. 해결의 시간은 내가 움직이는 시간이고, 모든 결정은 내가 해야만 한다.

나는 빵순이 알바생에게 1만 원을 주며 내 단골 빵집에 가서 네가 먹고 싶은 빵을 아무거나 골라 사 오라고 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두 손에 고이 들고 알바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만큼 사 올까요? 나는 1만 원으로 사 올 수 있는 만큼 사 오라고 했다. 빵순이 알바생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큼직한 맘모스빵 2개를 품에 끌어안고 돌아왔다. 우리는 4500원, 5000원짜리 빵을 함께 먹었다. 배가 불러 다 못 먹고 남은 빵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엔 또 다른 빵을 먹어보자고 했다. 알바생은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저도 사장님 같은 멋진 어른이 되겠어요."


세상에. 내가 멋진 어른이 되었다.




👉[빵 사주는 어른 2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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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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