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살아."
참오랜만이었다. 이말을들은건.
우리가족은항상재난상황에대비하듯살았다. 갑자기도둑이들면, 갑자기납치당하면, 갑자기지진이나서집이무너지면, 갑자기불이나면, 알수없는어떤비상상황이생기면... 그래서우리집에는늘비상가방이준비되어있었고어느정도의재난상황을견딜만한식량을항상구비해놓았었다. 언제어떤일이일어날지알수없으므로. 준비해놓는다고해서손해볼건없으므로. (참고 <생존체력>)
언제어떤일이일어날지알수없다는맥락에서, 우리부모님은 "나중에엄마가없어도...", "나중에아빠가없을때..."라는말을많이했다. 나또한 "엄마, 나중에내가없어도..."라는말을종종했다.
우리는이일어나지않은일들을이야기의마무리를이렇게지었다. "재미있게살자." 아빠는나에게말했다. "나중에아빠랑엄마가없어도재미있게살아." 나는말했다. "응. 재미있게살게. 아빠도나중에내가없어도재미있게살아요."
암진단을받고 병원에다니면서, 아무리치료를해도다나을수없다는걸알게된이후, 아빠는나에게말했다. "재미있게살아."
카페를오픈하고카페사장이되면서, 모든신경을카페에만쏟았다. 인테리어, 레시피, 영업시간, 알바스케줄, 청소, 동네분위기파악까지뭐하나대충할 수있는것이없었다. 이래서사람들이프랜차이즈를하려고하는구나하고깨닫고깨달았다. 프랜차이즈는이미완성된모든걸받아오면되는거니까. 나는그게싫어서 '나의카페'를만들고자개인카페의세계에뛰어들었던건데, 만들어가야하는부분은정말이지어마어마하게많았다. 몰랐던것이아니지만, 물론알고있었지만, 정말하나하나온전히내가직접다만들어야했다.
분명다준비해놓은것같은데, 손님은없는것들을찾기일쑤였다. 나는눈치를보며열심히메뉴를만들고, 또기껏만든메뉴를가차없이버리기를수도없이했다. (아니, 지금도하고있다. 아직도나의카페는완성되지못했다.)
그러니쉬는날은뻗는날이었다. 쉬는날나는아무것도하지못하고그대로뻗어버렸다. 간신히눈을뜨면바깥은이미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나는잠깐일어나서화장실에다녀온후다시뻗었고, 그렇게다음날아침이되었다.
집에서는 TV도틀지않았다. TV를볼시간도, 기력도없었다. 요즘어떤프로그램이인기인지모른채몇달이지났다. <슬기로운의사생활시즌2>를봐야지봐야지하면서도아직까지 단한번도보지못했다. 진득하게앉아서 5분도볼수없었다.
작년, 재작년에매일같이하던운동도전혀하지못했다. 카페주방에서틈틈이스트레칭을하고는있지만, 본격적으로운동복으로갈아입고땀을뻘뻘흘리며운동하던것과는전혀다른차원이다. 지난 2~3년동안열심히만들어건강하던나의몸은이제, 그때의체력을다끌어다쓰고바닥난몸이되었다.
얼마전, "휴가는언제예요? 어디로갈계획이에요?"라는 질문에머리를한대쾅맞은것같았다. "네? 휴가요?"라고화들짝반응하고나서야깨달았다. 아, 지금이휴가시즌이구나. 휴가를가야하는구나. 다들휴가계획을세우고있구나. 아무리코로나19로세상이어지러워도휴가는휴가였다. 아무리집콕을할예정이더라도, 휴가는휴가였다. '휴가'라는단어가이렇게생소할만큼, 나는 '휴가'에대한생각을전혀하지않고지내고있었다. 나에게는 영업일과휴무일만있었다.
친구가이직을했다. 새로간직장은여의도에위치한, 통유리에한강이한가득들어오는곳이었다. 친구는한강뷰앞에서집에서싸온도시락을먹으며(여의도는밥값이비싸서매번점심을사먹기가부담된다면서) 나에게이렇게말했다. "외국계회사다니다가완전한국회사로오니까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떨어지네. 칼출근에칼퇴근하고, 일주일에두번씩꼬박꼬박재택근무하다가, 여기서갑자기야근하려니까 '라'가확줄어."
이말을듣고나는또한번머리를한대쾅맞은것같았다. 아! 워라밸! 카페일을시작한이후로 '워라밸'이라는단어자체를생각해본적이없다. 생각해보지않았으니, 온세상곳곳에서떠들어대는 '워라밸'이라는단어가귀에들어온 적도없었다. '워라밸'은내관심사가아니었다. 지난 8개월동안나에게는 '워'만있었다.
내가원하는일이어서시작했고, 이일이라면내가얼마든지즐겁게할수있을것같아서 '워곧라(Work가곧 Life)'로살아온 8개월이었다. 물론 '나의일'을하는즐거움은분명존재했다. 열심히커피를볶고재료를손질하고손님을만나면서나는행복했다. 카페에서 틈틈이책을보고글을끄적거리는게좋았다. 그렇지만 '워'는 '워'였다. 체력이바닥났고,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늙어갔다. 그걸 8개월만에드디어깨달았다.
그리고바로이때, 그러니까, 하필지금, 우리부모님을알고나의어린시절을아는분과아주오랜만에긴전화통화를했는데, 통화마지막에나에게이렇게말씀하셨다. "나는네가건강하기만기도할게. 너의건강은내가어떻게든 책임진다는말이야. 그러니까재미있게살아. 재미있게사는건너의몫이야."
머리에쾅, 심장에쾅, 쾅쾅쾅온몸에 울렸다. "재미있게살아."
아빠의목소리가겹쳐들렸다. "재미있게살아."
아빠의목소리가쾅쾅거리며온몸에웅웅울려퍼졌다.
아아, 그립고그리운이목소리.
나의 '라'를 위한여정이시작되었다.
일할때즐겁게일하고, 건강하고재미있는나의삶도가질것. 나의카페는아직완성형이되지못했고, 자영업자는어쩔수없이전전긍긍할수밖에없다지만, 그래도, 너무거기에얽매이지말것. 최선을다해열심히나의카페를가꾸되, 나의삶도가꿀것. 나의모든열정을카페에쏟아붓듯, 나의삶에도한스푼의열정을더해줄것. 충분히자고, 충분히운동할것. 건강한음식을맛있게먹고, 사람을만나즐거움을나눌것. 하늘을올려다보고숨을쉬고사랑할것.
이런생각을하고있는이때, 그러니까또하필지금이런때, 옆집사장님이이런말씀을해주셨다.
"장사한다고생각하지말아요. 이것도사업이에요. 사장님은사업가예요. 스스로를장사꾼이라생각하지말고, 사업가라고생각해야해요. 장사의세계에들어섰다고생각하지말고사업의세계에들어섰다고생각하세요. 사업에있어가장중요한건첫째도둘째도사람이에요. 믿을만한성실한사람을잘쓸수있어야해요."
이말을들으며, 나는또한번, 쾅쾅, 온몸을두들겨맞은느낌이들었다.
이후몇날며칠동안이말을곱씹으며, 나는 원대한꿈을가지기로했다. 우리카페가연중무휴로돌아가는원대한꿈. 나혼자는할수없으니, 이거야말로정말좋은직원이필요한일이었다. 정말좋은직원이한명만함께해준다면, 어쩌면, 나에게 '주말이있는삶'과 '저녁이있는삶'도허락되지않을까하는사치스러운욕심도살짝났다.
최근, 쉬는날어떻게든약속을잡고있다. 명분은 '남타커(남이타준커피)'다. 다른카페에가서커피를마시며시간을보내는것.
보통은친구와약속을잡지만, 때로는조금특별한시간을갖기도한다. '연중무휴'라는원대한야망을품은카페사장은 '매니저승급'이라는또다른원대한야망을품은알바생과함께남타커를한다. 그러니까, 이남타커는나의 '라'를위한시간인동시에, 우리카페를완성형으로만들기위한시장조사및아이디어회의시간이기도하다.
일하느라늘편한옷만입었지만, 이날만큼은다른옷을입는다. 옷장에처박아두었던예쁜옷. 커피국물튄낡은운동화는잠시벗어두고아껴두었던스니커즈나샌들을신는다. 일하느라늘질끈묶었던머리를풀어헤치고긴머리휘날리며살랑살랑걷는다.
맛있는음식을먹고, 하늘을올려다본다. 한여름의바람은뜨겁지만, 그래도큰숨을들이쉬면공기가온몸에가득찬다. 에어컨의공기가아닌 자연의, 이날것그대로의공기.
카페에가서두리번거리며어떤분이사장님이신지를찾아보고, 이것저것물어본다. "이커피는뭐예요?", "저커피는뭐예요?" 남이타준커피를쪼로록마시며맛을음미해보고즐거운이야기를나누며웃는다. 사진을찍고오늘나의 '라'를기억한다.
집에돌아오니아빠의목소리가귀에선연하다. "재미있게살아." 아빠의목소리가온몸에쾅쾅, 웅웅울려퍼진다.
이 글은 안녕워녕 사장님께서 캐시노트에 제공해주신 글입니다.
따뜻한 응원의 댓글은 작가 사장님께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