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치트키는 "천천히 하세요^^"이다.
카페에 혼자 들어온 한 손님이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몇 번 고민하는 듯하다가 카운터에 오셔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일행 오면 그때 주문해도 되죠?" 나는 "네~ 천천히 하세요^^"라고 했다. 손님은 고맙다면서 자리에 가서 앉아 있다가 일행이 도착하자 일행에게 "뭐 먹을 거야?"라고 소리치며 급히 카운터로 달려 나오셨다. 일행은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아니, 천천히 하시라니까.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선 손님들은 매우 바쁘다. 할 게 많다. 같이 온 일행들에게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봐야지, 카드도 꺼내야지, 쿠폰도 꺼내야지, 영수증도 받아야지, QR체크인도 해야지, 일행들한테 QR체크인하라고 소리도 질러야지... 그 와중에 카드가 한도 초과로 나오거나, 핸드폰을 아무리 흔들어도 QR화면이 나오지 않거나,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거나, 분명 받아둔 쿠폰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면 손님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흘깃 보며 "잠시만요"라고 하는 손님에게 나는 말한다. "천천히 하세요^^"
카페 안에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면, 앉아있던 손님은 엉덩이를 들썩들썩하신다. 비 오는 걸 보다가 시계를 본 손님은 나에게 달려와 "죄송한데, 우산 잠깐만 빌릴 수 있을까요? 집이 바로 근처인데, 5분만 쓰고 바로 돌려드릴게요!"라고 하신다. 나는 "천천히 다녀오세요^^"라고 한다. 손님은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하시고 빗속을 달려 나가신다. 아니, 천천히 다녀오시라니까.
내가 친절하게 하면 할수록 손님들은 어쩔 줄 몰라하시며 나에게 더 친절하게 해 주신다. 친절하면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한다고들 하던데, 우리 손님들은 내가 베푼 친절보다 더 큼직한 친절로 나에게 돌려주신다.
손님들의 친절한 반응을 바라고 친절함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물론 나에게 친절하게 해 주시는 손님들에겐 너무너무 감사하지만, 나는 그냥 내 마음 편하려고 친절함에 욕심을 낸다. 어차피 말하는 거라면 기분 좋게 말하고 싶다. 잠깐 짜증이 난다고 말을 대충 내뱉어 버리면 듣는 사람도 기분 나빴겠지만, 두고두고 내 마음이 무겁다. 나는 내 마음 편하려고 친절을 일삼고 기분 좋은 말들을 연구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치트키들을 하나씩 저장해둔다.
나는 치트키를 사용하며 기분이 좋다. "편하게 하세요^^",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카페 사장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심지어 들으시는 분들이 그 말들을 듣고 기분 좋아해 주시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기분 좋은 말만 해야지. '수다는 금'이 속담이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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