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회원으로 이용중입니다. 로그인을 하시면 더많은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하기
회원가입하기
에세이
줄이 있는 이어폰을 위해 건배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이었네."
애매한 인간
서점겸카페 사장님의 하루
구독자 92
#에세이
#동네서점겸카페
#카페이야기

홈 보러가기
            

나는 변화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폰'을 두고 보니, 그건 아닌가 보다. 나는 줄있는 이어폰을 고집한다. 우선 줄 없는 이어폰이 그렇게나 비쌀 거라고 생각도 못한 데다가, 분실하면 안절부절못하는 손님들을 바라보니 줄있는 이어폰이 차라리 맘 편하다. 언제든 가방에서 줄을 주욱 잡아당겨 꺼낼 수 있고, 뺄 때도 줄이 달려있으니 그대로 뽁!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줄로 연결되어있는 게 얼마나 큰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지 모른다.

얼마 전 나는 휴대폰을 바꿨다. 갤럭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이폰을 샀다. 카페&서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데 그때마다 손님들이 '사장님 아이폰으로 갈아타세요'라는 말을 했었다. 아이폰만이 주는 그 색감과 감성이 있다고 하면서. 때마침 아이폰이 특가로 굉장히 많이 나오길래 바꾸게 되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어폰을 끼우는 단자가 없는 것이다! 위로 봐도, 아래로 봐도, 좌로 봐도, 우로 봐도 어딜 봐도 동그란 구멍이 없다.


손님들에게 물어봤다.
"아니, 이게. 기계가 혹시 잘못 나온 걸까요?"

손님들은 하나같이 '사장님 도대체 몇 살이세요'라고 물었다. 아이폰, 갤럭시 할 것 없이 최근 전자기기 트렌드의 이미지가 '심플'이기 때문에 이어폰 단자가 없다고 한다. 청전벽력 같은 소식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내 가방에서 잠자코 쓰임을 기다리는 이어폰을 두고 뭐라고 말하지. 멀쩡한데. 아직 쓸만한데.

결국 이어폰 없이 몇 개월이 흘렀다. 가방 속 잠자고 있던 이어폰은 수많은 USB 선들이 잠자고 있는 수납함에 들어가 있다. 이어폰 없이 사니까 살만하다가도 필요한 순간이 생겼다. 그런데 선뜻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사기에는 그 가격의 벽이 너무도 높았다. 결국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저렴한 무선 이어폰을 샀다. 그래도 비싼, 만 오천 원의 거금을 들여서.

기다림 끝에 온 무선 이어폰. 연결하는데 중국어로 뭐라고 말한다. 아마 '연결되었습니다' 겠지 라고 대충 알아듣는다. 그런데 얼마 못가 또 중국어로 뭐라고 안내음이 흘러나온다. 이어폰에서 붉은빛이 번쩍번쩍 나오는 걸 보니 '충천해주세요'라는 말이겠지.라고 알아듣는다. 한참이나 무선 이어폰을 가지고 낑낑거리고 있는다. 잠시 뒤 짝꿍이 뒤에서 나타난다.

"우와, 콩나물(*에어팟을 지칭하는 말) 샀어?"

그러다 남편은 이어폰이 지나치게 빛이 번쩍번쩍하는 데다가 중국어로 뭐라 뭐라 말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보다가 픽 웃는다.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이었네."

저놈의 인간. 휴. 줄이 있는 이어폰이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다. 치얼스.



📗 이전 글 보러가기 │ 일상이 쓰라린 내 손

2022년 01월 14일
캐시노트 가입하고
필요한 컨텐츠 알림받기
다음글
배달 피해사례별 대응방법 - 1편
공감 10
저장 1
댓글 2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