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떼루아' 🍷
산나물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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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어서 한참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강원도 인제의 산나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인제군이라도 산마다, 산의 지역마다, 계절별로 산나물의 향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상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부분 사람이 이와 비슷했다. 산나물 떼루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내가, 요즘 하는 말로,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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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재배 산나물도 떼루아의 영향을 받는다. 500m 고지 이상에서 자라는 녀석들이 낮은 지대 것보다 향과 맛이 더 강하다. 이런 설명 끝에 나온 말이 바로 이것이다.
산나물은 포도 혹은 포도로 만드는 와인보다 떼루아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와인의 떼루아는, 흔히, 토양에서 시작하여, 그해의 기후, 일조량, 강수량 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와인은 한 차례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친다. 이때 와인 제조업자들은 그해의 포도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늘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떼루아가 가지고 있는 장, 단점을 조정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산나물은 떼루아의 좋고 나쁜 점을 조정할 기회가 없다. 고사리같이 말리는 나물도 마찬가지다. 데쳐서 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고, 햇볕이 좋은 날 짧은 시간 바짝 말린 것이 식감이 낫다는 정도다. 마르면서 일정 부분 발효, 숙성되지만 와인만큼 넓고 깊게 작용하지 않는다. 산나물은 그야말로 자연 상태의 것일 뿐이다. 맛과 향이 좋지 않은 산나물을 좋게 만드는 관리 방법은 없다.
굳이 떼루아를 이야기하자면, 와인보다 산나물이 더 깊고 넓게 영향을 받는다.
왜 산나물도 떼루아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거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재배 산나물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자연산 산나물,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산나물의 도시의 마트, 시장에서 만나기는 힘들다. 추정, 자연산 산나물의 양은 총 산나물 생산량의 10% 이하일 것이다. 강원도 인제 기준, 5월 한 달 자연산 나물이 나온다. 재배한 것이라도 5월이 되어야 선을 보이고, 불과 한 달 정도 출하된 후, 바로 자취를 감춘다.
자연산이든 고산지 재배든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서울의 가락시장, 경동시장 등에서는 만나기 힘들다. 백화점이나 농협 판매장 등에서 한 달 정도 반짝 선을 보이고 사라지니 일반인들이 이런 산나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제대로 된 것을 본 적도 더더구나, 먹어본 적이 없으니 ‘진짜 나물 맛’을 알 리가 없다. 진짜 나물 맛을 모르는 이들이 ‘산나물 떼루아’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산나물 떼루아? 그게 뭐예요?”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참나물은 ‘진짜 나물’이라서 참나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참, 진짜 나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도시 마트, 장터에서 만나는 나물들은 이름만 참나물일 뿐, 참나물의 향과 맛은 거의 없다. 참나물 샐러드를 파는 외식업체에서 몇 차례 참나물 샐러드를 먹었다. 향도 없고 맛도 없었다. 이파리의 모양새, 이름만 참나물이었다.
이건 아니다, 라고 했더니 안면이 있는 주인이 대뜸 묻는다.
시장에 가서 가장 좋고 비싼 식재료를 구한다는 이도 이렇다. 한 번도 자연산, 고랭지 참나물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참나물 맛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산나물 혹은 참나물 떼루아를 이야기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강원도 인제에서 15개월째 보내고 있다. 주소지도 강원도 인제군 북면으로 옮겼다. 주민세도 내고, 투표도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외지인으로 인제에서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 인제, 원통이다. 원통이 불과 5분 거리인 곳에서 살고 있다. 주소지를 옮기고 나서 15개월이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드나들었으니 인제, 원통과의 인연은 30년을 훨씬 넘겼다. 물론 30년 전부터 산나물을 만나러 왔었다.
지인들이 왜 그 먼 강원도 산골까지 갔느냐고 묻는다.
👨 “산나물 공부하러 왔습니다. 한식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 한식의 시작과 끝은 나물, 그중에서도 산나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지에서 직접 수도 없이 산나물을 보고 또 보니, 이제 겨우 산나물이 조금씩 보입니다”
이렇게 대답한다. 상대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산나물 이야기를 하면서 ‘단군신화’의 쑥과 달래로 시작했다. 나로서는 ‘한식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이야기한 셈이다. 쑥과 달래는 한식의 시작이다. 한국 사람들의 먼 선조, 단군시대 사람과 곰, 호랑이가 먹었던 반찬 혹은 채소이니 당연히 쑥과 달래는 한식의 시작이다. 왜 12세기 무렵에 완성된 <삼국유사>에서 굳이 쑥과 달래를 언급했는지 되새겨야 한다.
쑥과 달래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란다. 산에서도 자라고, 들에서도 자란다. 누구나 귀천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구하기 힘든, 귀한 것도 아니다. 다른 나라의 신화에서는 산 넘고, 물 건너, 죽음을 강을 건너고, 흉포한 괴물들과 싸워서 쟁취하는 먹거리들이 더러 나온다. 사람의 수명을 연장해준다는 불로초도 그중 하나다. 불로초보다는 곰을 인간으로 만드는 쑥과 달래가 한결 구하기 쉽다.
이런 아이러니를 되새겨 보면 한식이 보인다.
쑥과 달래는 평화롭다. 나물을 캐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물을 캐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중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 눈, 손, 손에 든 호미, 땅, 나물이 하나가 된다. 나물 캐는 순간만큼은 나물에 집중하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강원도 인제의 땅에서 나물을 채취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한 몰입의 시간이다.
그까짓 30분 안팎, 나물을 캐봐야 돈으로 환산하면 몇 푼도 되지 않는다. 나물 캐는 이들을 보면 산과 들에서 나물을 보는 순간, 함성부터 지른다.
비닐봉지를 준비하고, 바로 나물 캐기에 돌입한다. 나물을 캐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집중하면서도 편안한 얼굴이다. 더러 나물 군락지(?)라도 만나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나물을 만나면, 가까운 곳의 동료들을 부른다. 경쟁하지 않는다.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챙긴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이 캔 나물을 나눠주는 광경도 여러 번 봤다.
두 해째, 나물 제철을 인제에서 맞았다. 다른 곳에서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그러나 고산지에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나물들을 만난다.
🌿 곰취, 취나물, 참두릅, 개두릅(엄나무 순) 땅두릅(독활), 병풍취, 개미취, 수리취 부지깽이나물, 얼러지, 홑잎 나물(화살나무 순) 오가피 순, 다래 순, 질경이, 명이나물(산마늘) 전호나물, 산미나리, 고추나무 순, 누리대 고사리, 고비, 원추리, 머윗대 등등... |
약 30여 년 전, 음식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의 일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귀띔했다.
공부가 짧아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했다. 점봉산도 오늘날같이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점봉산도 아니고 점봉산의 북쪽, 기울어진 곳이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표현이었다. 이해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기억만 하고 있었다. 점봉산 자락을 다니면서 이 지역에서 자연산 산나물이 많이 나오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왜 북쪽 기울어진 면의 산나물이 좋은지는 몰랐다. 10여 년 전부터 인제를 자주 다니고, 며칠씩 묵으면서 조금씩 ‘점봉산 북사면 산나물’에 대해서 알기 시작했다.
점봉산은 정확하게는 남설악의 주봉이다. 해발 1,424m. 꽤 높은 산이다. 남쪽은 양양군이고 북쪽은 인제군이다. 점봉산의 북쪽 인제 언저리가 이른바 ‘진동 골 산나물’이 나오는 진동이다. 우리 국토에서 참 외진 곳인 인제, 원통에서도 한참 외진 곳이다. 이 지역을 거쳐 간 군인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곰배령도 진동리의 한 부분이자 점봉산 북사면의 한 부분이다.
고산 지대이니 여름에도 서늘하다.
일교차가 크고,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다.
경사가 급하니, 물과 더불어
토양의 영양분도 쉬 빠져나간다.
토질이 척박하고 그늘이 많이 진다.
산나물들은 쉬 질겨진다.
덕분에 산나물은 양양 것보다는 크지 않지만, 향과 맛이 강하다. 향이 강하고, 단맛, 쓴맛도 강하다.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강원도 산나물을 구해 쓰는 이들은 오히려 양양 장으로 많이 몰린다. 물건이 많이 나오고 가격도 비교적 눅기 때문이다. 같은 산에서, 비슷한 위도의, 비슷한 해발 고도, 같은 토양에서 자란 산나물이라도 다르다. 그해 기온과 강수량, 비 오고 나서 며칠 후에 채취하는지, 양지에서 자란 녀석인지, 음지에서 자란 녀석인지, 일조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따라서도 산나물의 맛과 향은 전혀 다르다.
왜 우리는 나물을 이렇게 홀대할까?
산나물, 들나물을 이토록 다양하게 먹는 민족은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자랑하면서도 왜 나물은‘그까짓 풀때기’라고 멸시할까?
사찰음식을 이야기할 때는 “외국에 내놓을 만하다”고 평가하며 각종 행사에 사찰음식을 선보인다. 정작 국내에서는 나물을 이야기할 때 늘 멸시한다.
산나물, 나물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