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카페&서점을 사무실로도 쓰고 있다.
최근 쓰리잡을 뛰고 있다. 아니 포잡인가? 카페 사장, 책방지기, 누군가의 엄마, 그리고 알바생.
카페 영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알바를 시작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의 홍보를 위해 카드뉴스 만드는 일이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말에 냉큼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6개월에 200만 원으로 계약을 했다. 당분간 월세는 걱정 없겠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행사를 개최하고 준비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이 들어가는지!
나는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각자가 서로를 모르는 채로 만나다 보니,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게 된다.
그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고, 자신의 위치를 상대방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가 인사과에 있는데 몇천 명의 인건비를 지불하고, 몇백억 예산을 담당하기도 했었어요"
"저는 이런저런 공모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어디 어디에서 일도 해봤어요"
"제가 시장님과의 회의에 참석을 하는데...."
그런 그들을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이런 말이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티를 내고해야 한다고.
조용히 묵묵하게만 일을 하고 있으면, 누구도 그 가치를 몰라준다고.
그러니 전화를 받아도 조금 소란스럽게 받고, 일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더 큰 목소리로 말하면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며 쉬지 않고 일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려 부단히 애썼다.
나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 그 사람하고 같이 작업했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모든 게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고 나니, 정작 나는 벌거숭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도, 내가 만지던 돈도, 내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모두 회사가 '부여'한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인맥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팀장님이 있었다.
팀장님은 주소록에 있는 수천 명의 연락처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회사를 다니며 받았던 수천 장의 명함을 나는 퇴사할 때 두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가치나 위치를 높이려고 할 때마다 괴리감에 휩싸였었다.
'수십억 예산을 만지던 나인데, 내가 왜 택배를 싸고 있지?',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랑 홍보마케팅을 하던 나인데, 내가 왜 이런 잡다한 일을 하고 있지?'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할수록 이 괴리감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괴리감이 커질수록 스트레스도 커진다. 그렇기에 퇴사 후에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데 부단히 애를 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려놓음이 가능해지자, 나는 지금 무척이나 후련하고도 가볍다.
나는 앞에 앉아있는 6개월간의 고용주를 바라본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에는 물론, 그 사람의 열정, 노고와 노력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힘들다'라고 말하는 그 앞에서 그저 쓸쓸히 웃어 보인다.
그가 자신의 중요성을 조금 내려놓길, 너무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애쓰지만 않길.
그렇다면 오는 괴리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텐데,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될 텐데. 부디 그가 엄청난 괴리감에 휩싸이지 않길 바라며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에 한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직장인들이 하나 둘 사마신 테이크아웃 커피잔들이 직장 내 화장실 한편에 켜켜이 쌓여있는 그 사진.
컵들을 치우는 건 청소부의 역할이라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긴 그 자그마한 마음들이 모여 큰 쓰레기산을 이룬 것이다.
나는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주는 힘을 안다.
'나 이런 사람인데'라는 고정관념을 깨게 되는 그 가르침을 안다. 내려놓으면 보인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내가 해야 하는 일, 네가 해야 하는 일, 그런 이분법적 구분선이 보이지 않게 된다.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본인이 한정 지어놓은 역할이나 위치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길임을 이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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