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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은퇴한 아빠들의 '꿈'은 뭘까?
은퇴하고 나서 무얼 하고 싶냐는 우리의 물음에 아빠는..
애매한 인간
서점겸카페 사장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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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쓴 일기 같은 글들을 읽어주는 구독자, 그 구독자님이 경남 진주까지 와주신 거다. 심지어 이 구독자는 내게 여러 차례 메일을 보냈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 '아빠 알바생' 에피소드에서 공감을 했다고도 했고, 카페가 어디인지, 괜찮다면 찾아가도 될지 물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용기가 없었다. 8평짜리 가게, 4년 차가 되어 이리저리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공간을 공개하기가 두려웠다. 상상을 동원해 읽었던 글에서 생각했던 카페와 실제의 카페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실망할 거라 여겼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있지만 이면에 초라한 내 모습을 들키기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쩌다 책이 출간되었고, 어쩌다 책에 카페 이름이 공개되었다.(이것도 정말 마지막에 결정되었던 사안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 구독자님이 우리 카페에 방문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의 얼굴에 묻어있는 반가움을 통해 누군지 직감했다. '아, 그분이시구나!' 손님은 여러모로 나와 공통점이 참 많았다. 92년생 딸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는 몇 살이냐고 묻길래, "저도 따님분이랑 동갑이네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손님은 어느새 커서 독립하고, 어엿하게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딸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 모습을 잔잔히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아빠 같아요. 아빠가 보고 싶네요"라고 순간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빠라는 존재는 자식이 없는 곳에서는 이렇게나 천진난만하고 또 활기차다.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우리 아빠와 같이 은퇴세대라는 거다. 손님은 은퇴 후 꿈을 찾아다니고 있다. 먹고 사느라, 자식을 키우느라, 노후 준비를 하느라 '꿈'이 없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니, 꿈을 잊어버리려 무던히 애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꿈을 향한 첫발을 내닫을 수 있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정년퇴직이라는 무언가 가슴 씁쓸한 그것을 이루어낸 후야 '꿈'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노후에 무엇을 할지 오랜 시간,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글을 쓰고 싶다. 그게 그의 꿈이 되었다. 손님은 그 꿈을 안고 브런치의 글을 읽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많은 브런치 작가들을 만나러 다녔다. 손님의 열정이 오늘 우리의 만남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이곳저곳 많이 다녀본 경험,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연륜을 녹여내어 본인만의 '글'을 완성하는 게 꿈인, 그 손님은 정말이지 열정으로 가득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어 대학에도 등록했다. 작가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또 본인만의 경험을 쌓아간다. 그렇게 그는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준비하고 있었다.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아빠처럼 낮고도 울림이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소년처럼 활기 있었다.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때론 점잖고 때론 천진난만했다. 꿈을 이야기하는 그때의 카페는 참으로 청춘이었다.


손님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자꾸 아빠가 떠올랐다. 은퇴하고 나서 무얼 하고 싶냐는 우리의 물음에 아빠는 '일'이라고 말했다. 눈떠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 일상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여행도 가보고, 그간 못했던 것들을 해보라고 말해봐도 아빠는 거절했다. 되려 현실을 불안해했다.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는 현실, 내가 배운 교육과 기술이 도태되는 현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현실에 압도되었다. 아빠는 불안해했고 또 좌절했으며, 슬퍼했다. 일만 하고 사느라 '일'이 주는 안정감만이 아빠의 '꿈'이 되어버린 현실이,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겐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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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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