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여기 이런데가 있었소?"라는 정겹고도 구수한 사투리를 건네며 손님이 들어왔다. 벌써 4년 차라고 말씀드리니 어르신은 깜짝 놀란다. "아따 오래됐네" 어르신의 말씀이 괜히 칭찬처럼 들려 싱긋 웃었다. 어르신은 나에게 머그컵 하나를 내민다. 이 주변에서 머그컵을 내민 어르신은 처음이라 되려 내가 놀랐다. "어머, 어르신! 머그컵 들고 오셨네요" 어르신이 내민 머그컵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컵 바깥쪽에 'H라테'라고 검정 글씨로 쓰여있었다.
"내가 딸내미 심부름을 왔는디, 내가 뭘 알아야제. 여기 쓰여있는 거 좀 줄 수 있는가?"
여기에 카페가 있는지도 모른 채, 딸의 부탁 하나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어르신은 내게 그렇게 물었다. 메뉴판을 봐도 온통 모르는 메뉴밖에 없는지라 딸이 말해주는 메뉴 이름 그대로를 머그컵에 커다랗게 써가지고 오셨다.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 졌다. 머그컵을 내민 어르신의 손에 아빠의 손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그리운 마음을 꾸욱, 잠시 눌러 담아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르신, 혹시 카페라테일까요, 헤이즐넛 라테일까요?"H라테? 카페라테? 헤이즐넛 라테? 뭘까? 당황한 어르신을 곁에 두고 카페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다 함께 고민했다. 머리를 맞대고 추측했다.
"카페라테 아닐까요?"
"H가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헤이즐넛 아닐까요?"잠시간의 열띤 토론 끝에 우리는 'H라테 = 헤이즐넛 라테'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헤이즐넛 향 가득한 커피를 머그컵에 가득 담아 드린다. "양이 많아서 뚜껑을 살짝만 닫았어요." 쏟아질라 조심히 건네받은 어르신의 패딩 안에 잘 익은 귤 두 개와 초콜릿 두 개를 넣어드린다. "따님과 같이 드세요" 서로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20분 뒤, 어르신이 빈 머그컵을 가지고 다시 오신다.
"딸이 다시 사 오래~"
"카페라테래요?"
"네. 따신 걸로. 딸이 다시 써줬어요."
머그컵에는 'HOT 카페라테'라고 정확하게 표기되어있었다. 우리의 잘못된 추측으로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딸의 심부름을 다시 하는 어르신을 보고 있으니 정말 웃음만 나왔다. 카드를 내미는 어르신에게 "아이고, 제가 잘못 알았는걸요"라고 말해보지만, 힘들게 장사하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나를 한사코 말리신다. 카드를 내미는 손님과 그걸 거절하는 나의 치열한 몸싸움이 몇 번 오갔다. 결국 체념한 손님을 뒤로하고 따뜻한 카페라테를 내렸다. 샷을 내리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머그컵에 담았다. 만족스럽군. 그리고 어르신께 전달하려고 하자
"앗! 어르신 안돼요!"
카드를 단말기에 꽂아 넣고 있는 어르신이 보인다. 카드를 넣었다가 뺐다, 손에 쥐었다가 넘겨주었다가 재미있는 실랑이가 오간다. 주변의 손님이 웃으며 중재를 해준다. "어르신이 다음번에 딸 손잡고 커피 마시러 오시면 되겠네요" 손님의 중재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르신은 그제야 카드를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는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에 즐거움을 타셔 마셨다.
손님과의 일상이 이렇게나 재밌고, 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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