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시간손님으로만살아온내가카페의사장님이되어 앉아있다.
우리카페에처음온손님들이나를부르는호칭은다제각각이다. "저기요!" "언니!" "아가씨!" "여기요!" 가끔어린아이를데리고온엄마들은 "카페이모한테인사해야지~"라고하기도한다. (이때어린아이가 "언니, 안녕!"이라고해줄때가있다. 그러면나는이상야릇한기분좋음에입꼬리를씰룩씰룩하는데, 이것은마치싸우기도전에이긴것같은그런기분이다.)
두세번온손님들중가끔 "사장님이세요?"하고물어오는분들이계신다. 나는아주쑥스러워하며 (아니라고할수는없어서) "... 네^^"하고대답하는데, 그러면손님들은 "어쩐지!"라고하시고는, 그이후로 "사장님! 사장님!"하고나를부르신다.
자주오는손님들은나에게거침없이 '사장님'이라고부른다. 가만생각해보면, 내가다른카페에가서나정도의젊은사장님에게 "사장님!" 하고부르기는쉽지않을것같은데, 우리손님들은나에게 "사장님!"이라고잘도불러주신다.
매일아침오시는점잖은직장인이신 '나의첫손님'(참고 <내가좋아하는걸좋아해주시다니>)은 "사장님! 오늘은아메리카노사이즈업으로먹겠습니다!"하고주문을하시는데, 나는한번씩, 왠지부끄럽고쑥스럽다.
우리카페에놀러온한친구가 나에게 "사장님은사장님이네"라고말했다. 그게무슨말이냐고했더니 "손님과그렇게눈을마주치는사람은사장님밖에없어."라고했다.
아하.
그러고보니다른카페나식당에가서눈으로가게를훑으며사장님을찾아볼때, 어떤분이사장님인지를알아보는건그리어려운일이아니었다. '사장님'이란명찰을달고있지는않지만, 딱봐도사장님은사장님이다. 손님과눈을마주치는분.
사장님이된나는다른사장님의일거수일투족에무척이나신경이쓰인다. 어떤말을하시는지, 어떤동선으로어떻게일하시는지. 내눈은다른곳을둘러보고있지만내몸의모든촉은사장님들을향해있다.
난사장님들을보며, 요즘, 종종, 꽤요란하게감정이입을하고있다.
아이스크림을사러배스킨라빈스에갔다.
늘알바생만있던곳인데, 웬일로사장님혼자매장을지키고있었다. 누가봐도사장님인사장님. 내눈을보고인사하시는분. 나는늘주문하던대로 "쿼터하나포장해주세요~"라고했고, 사장님은결제후네가지아이스크림을골라달라고했다.
사장님이내아이스크림을푸고있는데, 문에서 '딸랑' 소리가나며손님들이들어오셨다. 나는이 '딸랑' 소리에하마터면 "어서오세요!" 하고소리칠뻔했다. 내가움찔하는사이, 사장님은아이스크림통에온몸을처박고아이스크림을푸면서 "어서오세요!"하고소리쳤다.
나는이상한울컥함을느꼈다.
뒤이어또다른손님이또들어오셨다. '딸랑'. 나는또움찔했다. 내목구멍에 "어서오세요!" 하는목소리가 차올랐다. 나는나의목소리를간신히참아가며조용히서있었고, 사장님은계속아이스크림통에온몸을처박은채로 "어서오세요!"하고한번더소리쳤다.
이렇게내뒤에들어온두팀의손님은모두 60대이상의어르신들이었다. 먼저들어온팀은키오스크앞에서 "이거뭘어떻게하는거야?"하고우왕좌왕하고있었고, 뒤에들어온팀은 "여기커피도팔아요?", "앉아서먹을수있어요?"하고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자꾸만움찔했다. "잠시만요! 금방주문도와드릴게요!"라고말하고싶어죽을것만같았다. 나는손님들의뜨거움을뒤통수로느끼며계속움찔거렸다. 그러나나는이혼돈과카오스의현장에서우두커니서있을수밖에없었다. 여긴내가게가아니므로.
다른손님들에게 "잠시만요!" "조금만기다려주세요!" 하고소리치면서힘겹게아이스크림을푸는사장님을보며나는또한번이상한울컥함을느꼈다. 어떻게든사장님을돕고싶은마음이굴뚝처럼올라왔다. 그렇다고내가손님들을상대할수는없는일이었다. 내가아무리오지랖쟁이여도그건안될말이었다. 여긴내가게가아니므로. 그래, 여긴내가게가아니므로.
얼마의시간이지났을까. 5초쯤지난것같다. 50분같은 5초. 아무래도 도저히가만히있을수가없었다. 낑낑대며아이스크림을푸고있는사장님의뒤통수에대고큰소리로말하기시작했다.
"사장님~ 저가는데는 10분정도걸려요. 그러니까드라이아이스는사실안넣어도되는데, 그래도날이너무더우니까한덩이만 넣어주세요. 아무튼제가빨리뛰어가서얼른냉장고에집어넣을게요. 아그리고, 스푼은안주셔도돼요. 쇼핑백도안주셔도돼요. 그냥봉투에만한번싸주시면 제가방에넣을게요."
내뒤에시끌시끌하던손님들이조용해졌다. 누가봐도나는제일먼저온손님이었고, 사장님은 나와대화해야했다. 사장님은아이스크림을푸다말고나를올려다보시며, 그렇게내눈을바라보시며, "네! 알겠습니다!"하고싱긋웃어주셨다. 다담긴아이스크림을건네주시면서다시한번내눈을보며 "감사합니다! 맛있게드세요!" 하는사장님에게나는싱긋웃으며 "감사합니다^^ 잘먹을게요!"하고눈을마주치고나왔다. 내가할수있는최선이었다.
파리바게뜨에서는팥빙수를어떻게파는지궁금해져서파리바게뜨에갔다. 늘가던파리바게뜨였고, 참친절한사장님이계신곳이었다. 토요일오전 11시.
가게에는늘보던사장님과못보던알바생한명이있었다. 보아하니, 오늘처음출근한알바생인것같았다. 나는팥빙수를포장해달라고하고이런저런할인과적립카드를내밀고, 포인트로결제를했다. 처음엔그냥알바생에게맡기려던사장님은앞으로바짝다가와여러바코드를찍었고, 계산을하면서 알바생에게차근차근설명까지하셨다. "자, 봐, 이거할인이랑적립은동시에안돼. 손님들한테친절하게설명드려야해."
스물두세살정도로보이는여자알바생은고개를끄덕이며옆에서가만히듣고있었다. 잠시후사장님은 "그럼오늘은, 음, 일단팥빙수는내가만들게. 다른손님들오면네가좀봐줘~"하고팥빙수를만들러안으로들어가셨다. 나는팥빙수를기다리며다른빵구경을하고있는데빵주변에는나보다먼저온손님이이미 몇바퀴를돌며빵을고르고있었다.
잠시후문에서 '딸랑' 소리가나며새로운손님두분이안으로들어오셨다. 손님은쩌렁쩌렁한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주세요! 아니다, 아이스카페라떼주세요! 응? 뜨거운거먹을거라고? 아그럼뜨거운카페라떼랑차가운카페라떼한잔씩주세요. 응? 그냥아메리카노먹는다고? 아진짜. 아그럼그냥뜨거운아메리카노두잔, 아니뭘뜨거운거야, 이한여름에. 그냥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주세요!"라고정신없는주문을하셨는데, 알바생은그정신없는주문앞에정신이쏙나가버린듯멍해져굳어버렸다.
안에서팥빙수를만들던사장님이뛰어나오셨다. "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맞으시죠? 할인이나적립카드있으세요? 드시고가시나요? 테이크아웃하시나요? QR체크인한번해주시고요~"라고속사포처럼 (그러나아주친절하게) 말하시는동안알바생은뒤에서가만히서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에대한결제를끝낸사장님은다시팥빙수를만들러들어가시고, 알바생은카운터앞에계속가만히서있었다. 카운터옆한귀퉁이에는미처다포장하지못한빵봉지들이한가득쌓여있었고, 나보다먼저빵을고르고있던손님은슬슬빵을다골라가고있었다. 빵구경을하며기다리던나는속이터질것같았다.
그런데이파리바게뜨의사장님은정말착하고친절한분이셔서, 그와중에, 그러니까정신없이팥빙수를포장하는와중에 나긋나긋하게알바생에게말을하셨다. "자~ 거기그러고있지말고아메리카노만들어야지? 배웠잖아. 할줄알지? 거기그버튼누르고, 그렇지그렇지! 컵준비하고. 얼음은거기 있는거알지? 그렇지그렇지! 그래, 그렇게하면되는거야~"
나는다시한번이상한울컥함을느꼈다.
이때또 '딸랑' 소리가났다. 손님두분이또들어오셨다. 딱봐도단골아우라를폴폴풍기며들어온손님들은 "사장님~~~"부터하셨다. 사장님은또팥빙수를만들다말고뛰어나오셨다. 아, 사장님... 아직알바생은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을만들지못한상태였고, 빵을고르던다른손님은쟁반에한가득빵을들고카운터앞에서있었다.
새로들어온손님들은 (지금몸이열개라도모자란) 사장님에게말을걸기시작하셨다. "지난주에자몽에이드를먹었는데, 컵이작아졌더라고요. 이번에다그렇게작아진거예요?" 사장님은 "아니에요, 그렇지않을텐데! 아마우리알바생이헷갈렸나봐요! 죄송해서어쩌죠... 제가단단히교육시킬게요. 그래서오늘어떤걸로드시겠어요?"라고말하며손님을응대했다. 그러는동안알바생은다만들어진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을들고사장님뒤에또가만히서있었다. 나는또속이터질것만같았다.
사장님은자몽에이드두잔에대한계산을 (할인도적립도) 또하시고, 다시팥빙수를만들러들어가셨다. 이쯤되자, 나는하필이때빙수를포장하러온내가잘못했다는생각이들면서사장님에게미안한마음이크게들었다. 가만히서있던알바생은드디어아이스아메리카노두잔을손님에게드리고, 빵쟁반에대한계산을하기시작했는데, 어떤빵이어떤빵인지아직숙지가덜되었는지계속버벅댔다. 앞에서손님이한숨을쉬었다.
그리고또 '딸랑', 손님이들어왔다. 사장님은 "어서오세요!"를외치며, 알바생에게또나긋나긋하게말을하셨다. "잘하고있지? 그래, 그렇게차근차근하면되는거야."
나는이미친이상한울컥함에눈물이쏟아질것만같았다.
사장님이드디어팥빙수를들고나오셨다. "숟가락몇개필요하실까요?"하고내눈을보며묻는사장님에게나는 "안주셔도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하고빨리나오려는데, 사장님은다시한번나와눈을마주치시면서 "날이너무덥죠! 이런날팥빙수는탁월한선택인것같아요. 맛있게드세요!"하고그정신없는와중에나에게이어마어마한친절의말을해주셨다. 나는활짝웃으며 "네맞아요^^ 맛있게잘먹겠습니다^^"하고말하면서사장님의눈을보며꾸벅인사를했다. 내가할수있는최선이었다.
그다음주, 식빵을사러그파리바게뜨에다시갔다. 알바생없이사장님혼자앉아계셨다. 한주동안많은일이있으셨겠구나싶었다. 사장님은조금지친얼굴이었는데, 그래도 '매우친절함'을장착한채내눈을보며나를맞이해주셨다. "어서오세요!" 나는또이상한울컥함을느꼈다.
계산한식빵을가방에넣으면서 "저번에팥빙수맛있게잘먹었어요^^ 오늘식빵도잘먹을게요^^ 안녕히계세요!"하고또한번내가할수있는최선을하자, 사장님은 그렁그렁한눈으로내눈을빤히바라보시면서 "감사합니다! 조심히들어가세요!"라고인사해주셨다. 나는 쏟아질것같은눈물을간신히참으며밖으로나왔다.
사장님은사장님이라서온갖것들을다짊어져야한다. 사장님은사장님이라서그모든상황들을헤쳐나가야하는데, 그과정에서불평할수도없고포기할수도없다. 사장님은사장님이라서다른사람들에게 '제가이렇게나힘들답니다. 좀이해해주세요'라고말할수없다. 짜증낼수도투정부릴수도없다. 사장님은사장님이라서그냥온전히그모든것들을다끌어안아야한다. 끌어안을만큼품이넉넉하지못해도, 끌어안을기운이없어도, 그래도끌어안아야한다. 사장님은사장님이라서.
그러니사장님의이어마어마한친절함들속에는사장님의지독한외로움이들어있는것이다. (참고 <'사장님'이라는외로움>) 사장님이손님과눈을마주치며나긋나긋하게말씀해주시는그시간은사장님의넓은품과단단한기운이집약된시간이다.
내가느낀그이상한울컥함은그런맥락이었다. 사장님과눈을맞추고그분들의친절함을마주할때마다내가이상한울컥함을느끼며터져나오려는눈물을참았던건.
어제는한손님이커피를드시다말고나에게총총총걸어오셨다.
내가손님의눈을바라보기전에그손님은내눈을먼저바라보며 "이거드세요!"라고하시며마카롱을내미셨다. 당황해서 "네?"라고하는내게그손님은다시한번내눈을똑바로바라보면서 "이거드리고싶어서요!"라고해주셨다. "감사합니다"하고간신히말하는나를뒤로한채다시총총총걸어서자리에앉으신손님의뒷모습을보며나는무너져내렸다. 다리에힘이풀리고척추가꿀렁꿀렁해졌다. 온몸에피가도는건지쏠리는건지모르겠는그이상함을느끼고, 나는커피머신뒤에숨어엉엉울었다.
나는손님이조금만부드러운말투로말해주시기만해도, 그리고살짝 웃어주시기만해도간이고쓸개고다빼줄수있을것같은카페사장인데, 이렇게적극적으로나에게다가와주시면 무너져내릴수밖에.
이무너져내림을알기에, 나는다른사장님들에게내가할수있는최선을해드린다. 조금이라도덜힘드실까싶어서. 잠깐이라도덜외로우실까싶어서.
이 글은 안녕워녕 사장님께서 캐시노트에 제공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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