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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아무도 없는 교무실로 부르셨다. "왜 화장했어?" "눈썹을....눈썹이... 실수로 잘라가지고.... 없어가지고...." "응?" "...제가 너무 못생겨서요..."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유심히 본다. 그리고 선생님은 본인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딱 한마디만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마디만. |
"내 눈썹을 봐."
겨우내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눈썹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눈썹은 앞에는 머리숱이 송송 거리며 날렸으나, 동공을 기점으로 그 이후부터는 눈썹이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선생님 앞에서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푸시시식.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다 보니 바람 빠진 소리가 더 거세졌다. 푸푸푸푸쉭.
선생님은 눈물범벅인 채로 입은 움찔거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나도 이렇지만 잘 지내잖아? 자, 이제 가봐."
평상시 프란체스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찬바람 휭휭 날리던 선생님의 쿨한 한마디가 온전히 나를 녹여 내린다. 그 뒤로 나는 당당하게 복도를 거닐었다. 눈썹이 양쪽 다 반인채로.
🤸♀️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절친하게 지내던 5명의 여자친구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소리를 지르며 소식을 전했다.
"야! 내가 과팅 잡아왔다!!"
우리는 같이 환호했다.
'드디어 대학생활에 빛이 피는구나!'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팅은 4:4란다. 우리 중에 한 명이 빠져야 한다는 소식에 서로 눈치를 보았는데, 이상하게 그 무리 중 넷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치는 무엇보다도 나를 좌절하게 했고, 슬프게 했고, 주눅 들고 또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 무리를 빠져나간다. 그럼으로써 세상에서 빠져나간다.
도대체 겉으로 보이는 게 무엇이길래, 외모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나를 송두리째 잡아먹나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세상에 상처 입고, 회복했다가도 또 상처 입길 반복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금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내 눈썹을 봐"
그래, 어쩌겠어. 내가 생긴걸 이렇게 생겼는걸.
🎀
알랭 드 보통도 말한다.
"개인의 외모는 삶의 가장 비민주적인 부분에 속한다. 외모는 마치 복권과 같고, 여러분은 아마 당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에 당신은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생긴 건 그들 탓이나 공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긴 것뿐이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남들과 다르게 당신의 머리를 좋게 평가할 것이다. 못생긴 사람은 아름다움의 진가를 인정할 최적의 위치에 있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에게 호의를 보일지 고려할 때 이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외모는 어떻게 보면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고. 그러니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외모를 가꾸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게 주어진 외모는 내가 어떻게 손쓸 수 없이 말 그대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왜 저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왜 내 눈썹을 저렇게 자라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주어진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보이는 대로 가꾸며 살아가는 지금이 속 후련히 편할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한마디처럼 "내 눈썹을 봐" 있는 그대로 보길. 사랑하길. 아껴주길. 가꿔주길. 행복하길.
❤️